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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장혜원 前梨大음대학장, 10년만에 훔멜 전곡 녹음

입력 | 2005-12-21 03:02:00

김재명 기자


“훔멜의 피아노곡은 시작은 베토벤처럼 힘차고, 때로는 쇼팽처럼 감미롭지요. 사람들은 베토벤과 쇼팽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몰랐는데 중간에 훔멜이 있었던 거예요. 녹음하는 동안 정말 그의 음악에 감격하고 흠뻑 도취됐던 것 같아요.”

피아니스트 장혜원(66·전 이화여대 음대 학장·사진) 씨에게 올해는 특별한 해다. 헝가리 태생의 작곡가 훔멜(1778∼1837)의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10년 만에 완성했기 때문. 이로써 1980년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인 음반사 낙소스와 계약한 이후 25년간 20여 개의 음반(단독 음반 11개)을 발표해 온 장 씨의 대장정도 일단락됐다.

훔멜은 모차르트와 하이든의 제자로 베토벤과 동시대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했던 음악가. 쇼팽과 리스트에게 영향을 미친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장 씨는 섬세하고 세련된 색채로 고전과 낭만주의 음악의 다리 역할을 했던 훔멜의 음악적 이상을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낙소스는 세계적인 음악가의 희귀악보와 연주력 있는 무명의 아티스트를 발굴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으로 성가를 높여 온 음반사. 초기에 저가 마케팅으로 돌풍을 일으켜 세계 굴지의 메이저 음반사로 성장했다.

“25년 동안 낙소스를 통해 세계무대에서 연주와 녹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늘 제가 원하는 곡만을 연주했던 것은 아니에요. 낙소스에서 보내 주는 새로운 악보를 공부하고 재창조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그의 낙소스 데뷔 음반은 1980년 녹음한 스카를라티의 ‘33개의 소나타’. 그러나 1987년 훔멜의 ‘피아노협주곡 2, 3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게 됐다. 지난해 6월 내한했던 낙소스의 클라우스 하이만 사장은 “장 씨는 훔멜 스페셜리스트”라고 평했다. 장 씨는 이후 피에르네 작품집(1989년), 바흐 피아노협주곡집(1990년), 이베르 피아노작품집(1991년), 하이든 피아노협주곡집(1992년) 등 매년 새로운 음반을 발표해 왔다.

주로 고전 음악에 주력해 온 장 씨는 낙소스를 통해 피에르네, 이베르 등 잘 알려지지 않은 현대곡 레퍼토리 개척자로서도 강한 이미지를 남겼다. 파리 콤팩트사는 장 씨의 피에르네 음반에 대해 “앞으로 20년 동안 거론될 최고의 음반”이라며 ‘레퍼런스’의 칭호를 부여했다.

장 씨는 1995년 훔멜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을 시작했으나 이화여대 음대 학장, 한국음악학회장 등을 5년간 맡으면서 녹음작업을 중단해야 했다.

“하루 7∼8시간씩 피아노 앞에 앉아 있으면 모든 잡념이 사라져 늘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행정업무는 예술가에게 엄청난 희생을 요구하는 멍에였어요.”

장 씨는 학장에서 퇴임한 뒤 2년간 훔멜의 피아노 소나타 9곡 전곡 녹음을 완성했다. 서울 마포구 이원문화센터를 운영하며 음악 꿈나무를 키우고 있는 장 씨는 “피아노 앞에 앉으면 무념무상에 빠져 들던 연주자로서의 예전 내 모습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