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의 남자’에서 조선시대 남사당 패의 광대 장생 역을 맡은 감우성. 사진 제공 영화인
단 한 개의 장면이라도 빼 보라, 이 영화에서. 그건, 오장육부 중 하나를 날로 떼어내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일이 될 터이다.
영화 ‘왕의 남자’는 이렇듯 어느 한순간도 들어낼 수 없을 만큼 옹골졌다. 이 영화는 ‘비주얼’ ‘스타일’ ‘4억, 5억 원의 배우 개런티’ ‘100억 원대의 천문학적 제작비’ ‘해외 로케이션’ ‘혈기왕성한 스타 감독’ 등 허울 좋고 부피 큰 단어들의 무게에 짓눌려 압사 직전에 있는 최근의 충무로에 신선한 시사점을 던져 준다. 그건 바로 ‘기본’의 중요성이다.
조선시대 남사당패의 광대 장생(감우성)은 양반의 꼭두각시로 전락해 버린 자신들의 삶을 박차고 나와 더 큰 놀이판을 찾기 위해 마음속 깊이 사랑하는 동료 광대 공길(이준기)과 함께 한양으로 입성한다. 타고난 재주로 놀이패 무리를 이끌게 된 장생은 연산(정진영)과 그의 애첩인 녹수(강성연)의 애정행각을 풍자하는 놀이판을 벌여 장안의 명물이 된다. 장생 일행의 공연이 마음에 쏙 든 연산군은 궁내에 광대들의 거처를 마련해 주면서 공길에게 남다른 눈길을 던지기 시작하고, 질투심에 휩싸인 녹수는 모종의 음모를 꾸민다.
‘연극적’이란 말은 적어도 영화에선 ‘비현실적으로 과장된’ 정도의 의미를 가진 부정적 용어로 사용되었던 게 사실이지만, ‘왕의 남자’는 이 단어의 함의조차 통쾌하게 뒤집는다. 이 영화는 ‘리얼리티 따위를 따질 겨를이 없이 강력한 흡입력을 가졌다’는 점에서 대단히 ‘연극적’인 것이다. 2000년 초연 이후 국내 각종 연극 상을 휩쓴 화제의 연극 ‘이(爾)’를 원작으로 한 영화는 참으로 지혜롭게도 원작이 가진 탄탄한 드라마와 긴장감 넘치는 대사들과 때론 결혼하고 때론 이혼하는 방식을 통해 원작의 존재감을 훌쩍 뛰어넘어 버린다.
장생과 공길이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이 영화는 해학과 페이소스 사이에서, 권력욕과 애욕 사이에서 절묘한 외줄타기를 하는 데 성공을 거둔다(장생과 공길이 함께 외줄을 타는 마지막 장면은 ‘올해의 라스트 신’으로 손색이 없다). 장생과 공길, 연산 사이에 얽히고설킨 사랑이 동성애라는 ‘특별한’ 사랑을 넘어 애틋하고 절절한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감성으로 치환될 수 있었던 것도 이 영화가 관객의 감정 선을 쥐락펴락하면서 기쁨과 슬픔이 사실은 똑같은 어미의 자궁에서 나고 자란 일란성 쌍둥이 같은 존재임을 일깨워 준 덕분이기도 하다.
장생 일행이 벌이는 놀이극, 공길이 연산을 위해 벌이는 인형극과 같은 ‘영화 속 연극’의 요소들은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이들 장면은 어느새 큰 줄기의 이야기와 살을 섞으면서 어떤 때는 인물의 감정을 증언하고 어떤 때는 인물의 운명을 예언한다. ‘겨우’ 44억 원을 들여 이런 원색적이고 화려한 비주얼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도 믿기지 않거니와, 이런 비주얼은 등장인물들이 가진 심정의 우물 밑바닥까지 지독하게 파고들겠다는 진정성 넘치는 연출에 힘입어 꿈틀거리는 생명력을 얻는다.
배꼽조차 절묘하게 예쁜 ‘매혹적인 남자’ 이준기는 그 풋사과 맛과 같은 신선함이 일품이고, 감우성은 귀에 착착 달라붙는 발성이 사극을 통해 더욱 빛난다. 늘 잘해 왔기에, 되레 주목받지 못하던 정진영은 폭발 직전의 밀도 높은 무표정으로 관객을 압도하면서 ‘미친놈’ 정도로 해석되던 연산의 평평했던 캐릭터를 재해석해 낸다. 이들의 연기가 형성하는 강력한 자장은 결국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 속 어떤 인물도 미워하지 못하고 연민의 정을 느끼도록 만든다.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남자는 ‘왕의 남자’ 속 남자들처럼 나쁜 놈이든 좋은 놈이든 모두 자기 안에 한 덩어리의 슬픔과 회한을 안고 사는지 모른다.
‘황산벌’의 이준익 감독. 29일 개봉. 15세 이상.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