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시네티즌
알래스카의 눈은 어딘지 달라 보인다. 밤 하늘을 수놓은 푸른 오로라 아래 눈부시게 빛나는 설원…. 포근하기보다 황량하고 적막한, 뭔가 애잔함이 깃든 듯한 풍경으로 다가온다.
로빈 윌리엄스, 홀리 헌터 주연의 ‘빅 화이트’(감독 마크 미로드)에선 영화의 내용이나 배우들의 연기에 앞서 이 같은 알래스카의 눈과 거센 바람이 마음을 끌어당긴다. 눈 덮인 하얀 설원을 장시간 바라보면 눈이 멀어버리는 설맹이 생긴다. 영화는 알래스카의 설원을 배경으로, 사람을 눈 멀게 하는 또 하나의 문제인 돈 때문에 빚어지는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주연배우 로빈 윌리엄스의 이름만 보고 단순 코미디를 떠올린다면 예상이 어긋날지 모른다. 영화는 블랙 코미디의 결이 바닥에 깔린, 사람 냄새 풍기는 독특한 드라마다.
다 망해가는 여행사를 운영하는 폴 바렛(로빈 윌리엄스)은 투렛 증후군이란 병을 앓고 있는 아내(홀리 헌터)의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보험 사기극을 벌인다. 자신을 통제 못하는 아내는 잠시도 몸을 가만 두지 못하고 폴짝폴짝 움직이고 입만 열면 욕을 쏟아낸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5년 동안 실종된 동생의 사망신고를 내고 보험금을 신청하려는데 문제가 발생한다.
‘실종 7년’의 규정을 채우지 못하면 보험사에서 시체를 확인해야만 돈을 내준다는 것. 폴은 우연히 쓰레기통에 버려진 꽁꽁 언 시체를 훔쳐 가지만 안타깝게도(?) 이 시체엔 따로 임자가 있었다. 엎친 데 덮친 격, 시체를 찾는 두 악당이 아내를 인질로 잡은 데다, 죽은 줄만 알았던 ‘막가파’ 동생(우디 해럴슨)까지 그 앞에 나타난다. 게다가 폴의 사기극을 의심하는 보험회사 조사관(지오바니 리비시)은 끈질긴 추적으로 폴을 괴롭힌다.
로빈 윌리엄스가 보여주는 벼랑 끝에 내몰린 중년 남자의 초상은 코끝을 찡하게 한다. 우는 듯 웃는 듯, 윌리엄스의 묘한 표정은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기 힘든, 궁지에 몰린 남자들을 대변하는 듯하다.
하지만 냉장고 안에 꾸겨져 들어가고, 절벽에서 떨어지고, 동물에게 뜯어 먹히는 등 시체 훼손 장면은 비위가 약한 사람에게 거부감을 안겨 준다. 가벼운 코미디에 진지한 주제의식을 버무려낸 시도는 절반의 성공 같지만, 결말 부분의 역전은 가슴을 쓸어내리게 한다. 원제 ‘The Big White.’ 29일 개봉. 15세 이상.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