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극 지역의 기압이 중위도보다 높은 ‘음의 극 진동 시기’가 되면 극 지역의 찬 공기가 시베리아로 남하하고 차가운 시베리아 고기압이 확장돼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한파가 몰아친다. 위는 호남의 폭설 구름 사진.
올겨울에는 12월부터 매서운 북풍과 함께 찾아온 한파가 한반도를 꽁꽁 얼리고 있다. 호남 서해안 지방에는 유난히 많은 눈이 쏟아지는 한편, 강원 영동지방에는 건조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한파는 왜 찾아오고 눈은 왜 호남 서해안에만 집중되는 것일까.
○ 찬공기가 따뜻한 서해와 만나 눈구름 형성
겨울철 저기압이 한반도를 통과할 때는 비교적 따뜻한 상태에서 눈이 온다. 하지만 겨울에 호남에만 내리는 눈은 저기압과 상관없다. 이 눈은 추울 때 쏟아진다. 연세대 대기과학과 이태영 교수는 “시베리아고기압이 발달해 한국이 그 전면에 위치할 때도 눈이 내린다”며 “특히 서해안에 집중된다”고 말했다.
이때 강한 서북풍이 부는데 찬 공기가 상대적으로 따뜻한 바다를 만나면 바다에서 증발이 일어나 눈구름이 만들어진다. 발달한 눈구름은 서북풍을 타고 충청 서해안과 호남지방에 눈을 뿌리는 것이다. 때로 강한 눈구름이 생기면 폭설이 쏟아진다. 최근 호남에 잇따른 폭설도 이 때문이다. 동해 쪽에 위치한 일본 서해안에 폭설이 내리는 것도 같은 원리다.
또 서북풍이 불 때는 찬 공기가 태백산맥을 넘다가 수증기를 잃어버린다. 영동지방이 건조해지는 이유다.
한편 고기압이 북한 위쪽에 자리하면 동북풍이 불어 동해안에만 눈이 온다. 바다에서 만들어진 눈구름이 태백산맥을 넘다가 영동지방에 폭설을 퍼붓기도 한다.
○ 극 진동 2, 3주 이상 유지돼 한파도 길어
최저기온이 전날보다 10도 이상 떨어질 때 한파주의보가 발령된다. 지난주 기상청은 최근 2주 이상 지속된 한파가 ‘극 진동’과 관련된다고 발표했다. 극 진동이란 극과 중위도 지역의 기압이 서로 반대로 변하는 현상이다. 마치 시소를 타듯 기압이 극 지역에서 높으면 중위도에서 낮은 반면, 극 지역에서 낮으면 중위도에서 높아진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정지훈 박사는 “극 지역의 기압이 중위도보다 높은 시기(음의 극 진동 시기)에 시베리아고기압이 평년보다 매우 강해져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한파를 몰고 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연구결과는 올 7월 지구물리 분야 국제저널 ‘지오피지컬 리서치 레터’에 발표됐다.
음의 극 진동 시기에 북극지역에서 강한 한기가 중위도로 뻗어 나와 시베리아고기압이 크게 발달하고 강력한 시베리아고기압의 영향으로 한국의 기온이 평년보다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 박사는 “극 진동은 대개 2, 3주 이상 유지돼 이로 인한 한파도 오래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파는 수천 km의 지역에 걸쳐 1주 이상 영향을 미친다. 동장군이 한국뿐 아니라 중국 대륙 전체를 호령하는 셈이다.
○ 한파 잇따르는 데 북태평양도 일조
한파가 왜 연달아 오는지도 밝혀지고 있다. 2002년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천칭창 교수팀은 미국 기상학회에서 발간하는 저널 ‘먼슬리 웨더리뷰’에 매우 강한 한파가 또 다른 한파를 유발하는 과정을 발표했다.
시베리아의 한파가 동아시아지역에 들어왔다가 북태평양으로 빠져나가면 차가운 공기가 따뜻한 바다를 만나 상승기류를 만든다. 보통 겨울철 북태평양에 상승기류가, 시베리아에는 하강기류가 존재하는데, 북태평양에서 상승기류가 강해지면 시베리아에 강한 하강기류가 발생한다. 강력해진 시베리아고기압이 또 다른 한파를 가져올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다.
또 한파는 열대지역의 대류활동과도 관련된다. 정 박사는 “겨울철 열대지역에 30∼60일 주기로 천천히 동진하는 대규모의 대류활동이 있는데 이 활동이 상층대기를 통해 중위도에 영향을 준다”며 “특히 이 활동이 적도 인도양에 있을 때 한국에 한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연구내용은 지난해 미국 지구물리학회에서 발행하는 ‘저널 오브 지오피지컬 리서치-앳모스피어’에 실렸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 기자 cosm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