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계인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성(姓)인 버시바우(Vershbow)는 폴란드어로 ‘버드나무’를 뜻하는 ‘Wierzbowy’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그의 가족이 처음 미국에 입국할 때 이민국 직원이 잘못 알아듣고 엉뚱한 철자로 성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부드러움과 강경함을 겸비한 그의 면모는 실제 버드나무의 속성과 비슷한 측면이 있어 보인다.
봄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는 한없이 낭만적인 느낌을 주지만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재질은 단단하다. 조선시대엔 죄인의 볼기를 치는 나무 형구 중 가장 큰 곤(棍)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 백성을 착취하고 학정을 일삼던 탐관오리들은 버드나무 곤장을 맞고 죗값을 치러야 했다.
10월 중순 부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예일대 재학 시절부터 갈고닦아 온 드럼 연주 실력을 앞세워 한국인들에게 친밀하게 다가서려 노력하고 있다. 최근엔 추수감사절 파티와 한미우호의 밤 행사, 서울 강남의 한 재즈 바에서 가진 재즈 뮤지션들과의 공연 등을 통해 프로급의 기량을 선보여 큰 박수를 받았다. ‘소프트 파워’가 무엇인지를 아는 외교관이다.
그러나 그는 북한에 대해선 ‘범죄 정권’이라고 공공연히 각을 세우고, 북한의 인권 탄압과 위폐·마약 제조 등을 매섭게 비판한다. 전임자들과는 달리 북한 문제에 관한 한미의 이견에 대해 외교적 수사(修辭)를 써가며 에둘러 말하지 않고, 한국 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 같지도 않다.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에 한국 정부가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드러내놓고 항의하지 못하는 것은 그의 문제 제기를 반박할 명분이 마땅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엔총회가 17일 ‘북한 인권 상황에 대한 결의안’을 사상 처음 가결하고, 미국이 북한의 달러 위조에 관한 증거가 있다고 밝힌 상황에서 한국 정부가 미국에 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이 훈령에 따른 것인지, 사견인지를 묻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한국 정부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강조하며, 북한을 몰아세우는 것을 주저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북한의 행태도, 그를 두둔하는 듯한 한국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이다.
결국 북한이 실질적으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고, 비난받는 행동을 그만두기 전에는 국제사회가 북한의 현 상황에 결코 만족해할 것 같지 않다.
버시바우 대사가 최근 연주해 갈채를 받은 영국의 록 밴드 롤링스톤스의 ‘새티스팩션(Satisfaction·만족)’의 가사가 새삼 의미심장하게 들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나는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어요/나는 어떤 만족도 얻을 수 없어요/ 왜냐하면 나는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에요/나는 얻을 수 없어요/나는 얻을 수 없어요…(I can't get no satisfaction/I can't get no satisfaction/'Cause I try and I try and I try and I try/I can't get no/I can't get no….’)
록은 억압에 대한 저항과 변혁, 자유를 꿈꾸는 자들의 음악이다. 최초의 록 밴드 출신 주한 미대사의 드럼에 맞춰 북한의 변화 유도를 시도할 것인지, 귀를 막을 것인지 한국 정부의 고민이 깊어갈 것 같다.
한기흥 정치부 차장 elig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