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게릭병과 싸우면서 학업과 저술 작업을 해 온 이원규(오른쪽) 씨. 그는 아내 이희엽 씨가 세상과 통하는 소중한 끈이라며 고마워했다. 정경택 기자
“저의 손발 노릇을 하고 생계를 책임져 온 아내가 가장 고맙지요. 다른 사람을 만나면 아내가 제 입 모양을 보고 웅얼거리는 소리를 해석해 전달해 줍니다. 아내는 제가 세상과 통하는 소중한 끈입니다.”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의지를 잃지 않고 공부를 계속해 박사 학위를 받은 이원규(45) 씨. 지난해 인간 승리 스토리가 세상에 알려져(본보 2004년 8월 26일자 A30면 보도) 감동을 줬던 그가 그간의 역경을 담은 투병기 ‘굳은 손가락으로 쓰다’를 펴냈다.
고교 영어 교사였던 이 씨가 루게릭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1999년 말. 루게릭병은 언어 기능을 잃고 전신이 마비돼 가는 병이다. 병이 진행되면서 학교를 그만둬야 했지만, 다니던 대학원은 포기할 수 없었다. 병과 싸우면서 공부한 끝에 2004년 4월 성균관대에서 국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책에서 “그해 논문 작성을 앞두고 마비가 급격하게 진행돼 손가락도 거의 움직일 수 없었다”고 말했다. 컴퓨터 모니터에 화상 키보드를 설치해, 굳어버렸지만 유일하게 힘을 줄 수 있는 오른쪽 가운뎃손가락으로 한 자 한 자 논문을 썼다. 위로와 도전이 된 또 하나의 작업은 에세이 저술. “컴퓨터 앞에 앉아 하루 8시간씩, 남들은 10분이면 쓰는 분량을 3시간 넘게 썼다”는 그는 “그렇지만 지루하고 소모적인 작업은 아니었다”고 했다. 이 씨는 “몸이 건강하고 자유로울 때는 엄두도 내지 못했던 글쓰기 작업을 ‘육체의 감옥’에 갇히고 나서야 이룰 수 있었다”고 썼다. 루게릭병에 걸리면 2, 3년 안에 사망하는 경우가 많지만, 절망하지 않는 태도와 자기관리 덕분인지 이 씨는 6년째 학업과 저술 등의 활동을 해 오고 있다.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 이희엽 씨와 1989년 결혼해 중학생과 초등학생 아들을 두고 있는 이 씨는 “대학 강단에 서는 것이 꿈”이라고 밝혔다. 루게릭병을 앓는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사용하는 것 같은 음성변환 장치가 있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면서, “지금 당장은 값비싼 장치를 갖기 어렵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고 굳은 의지를 보였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