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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디자이너]가구 디자이너 양영원 씨

입력 | 2005-12-23 03:20:00


《사무 공간의 표정은 책상 의자 수납장 등 가구들에 의해 결정된다. 어떤 집기를 쓰느냐에 따라 사무 공간의 분위기가 달라진다. 양영원(54·크레아디자인 대표·사진) 씨는 한국에서 거의 독보적으로 사무실 얼굴을 만들어 온 디자이너다. 그가 디자인한 사무 가구는 국내 사무실 환경을 바꿔 왔다. 스타일을 비롯해 재료와 가공 기술,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능까지 그의 디자인은 사무 가구의 혁신을 주도해 왔다.》

○사무 가구의 트렌드를 만들다

사무 가구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는 것은 퍼시스 사(社)의 ‘퍼즐’이다. 퍼즐은 업무와 조직의 유형에 맞게 가구를 조립하는 ‘모듈 방식’에서 독보적이다. 책상 상판의 종류만 30가지가 넘는다. 그만큼 다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변형할 수 있는 것으로 양 대표가 디자인을 지휘했다.

지난해 그는 독립된 개인 공간보다 회의 공간이 중요해지는 추세를 반영해 이동식으로 공간의 효율성을 높이는 회의실 가구 시스템 개발을 주도하기도 했다.

퍼시스에서 새 모델이 나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모방 상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모방은 의장법으로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트렌드라고 하면 법적으로 심판하기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결국 모방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방안은 또 다른 혁신적인 디자인을 내놓는 것이다. 윤 대표가 주도해 온 가구 디자인은 늘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 올 수밖에 없었다.

○ 한국 사무 환경의 시스템화 주도

양 대표는 한샘의 디자이너로 한국 시스템 주방 가구의 효시인 ‘유로’ 일명 ‘노랑 부엌’의 탄생에 일조했다. 그는 이후 사무 가구 전문회사인 퍼시스의 창립 멤버가 됐고 디자인 디렉터를 맡아 1986년 첫 모델인 ‘유로테크’를 내놓는다. 이 상품은 당시 국내 사무실을 점령하다시피 했던 철제 책상을 대체했다.

유로테크는 철제 책상보다 3배 이상 비쌌지만 사무실의 칙칙한 분위기를 단숨에 바꾸었다. 특수 처리한 나무를 주요 소재로 사용한 데다 마감질도 산뜻하고 꼼꼼하게 처리해 철제 책상으로서는 따라오기 어려운 제품이었다.

특히 스타일보다 가구를 다양하게 조합할 수 있게 한 ‘모듈’ 시스템이 더 혁신적이었다. 사무 가구의 모듈화는 윤 대표의 대표적 디자인 콘셉트다.

기존 사무 가구는 책상 의자 캐비닛이 한 세트였다. 그러나 유로테크는 책상 하나만 하더라도 사이드 테이블 서랍 등 여러 부분으로 구성했으며, 테이블 수납장 파티션의 크기나 모양도 다양화했다. 사용자들은 이런 부분들을 이용해 사무 환경 시스템을 갖출 수 있었다.

퍼시스가 사무 가구의 시스템을 확장할 때마다 디자인 개발을 주도한 이는 윤 대표였다. 현 모델인 퍼즐은 다양한 크기와 형태의 책상을 비롯해 여러 종류의 확장 테이블, 책상과 책상을 연결하는 커넥터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 제품을 공간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조합하거나 변형하면 사무실 환경이 새로워지고 업무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창조해야

양 대표는 “가구는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되는 게 아니다”고 말한다. 형태보다는 내구성이 우선되어야 하기에 그만큼 가구의 구조를 철저히 알아야 한다.

금속 나무 플라스틱 돌 섬유 등 다양한 재료가 쓰이는 만큼 재료에 대해서도 이해가 깊어야 한다. 여기에 공정과 생산에 대한 과학적 노하우도 갖춰야 비로소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실현할 수 있다.

양 대표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시절부터 30년 넘게 쌓아온 가구에 대한 노하우로 사무 가구의 역사를 써왔다. 퍼시스의 창립 멤버인 그는 1997년 크레아디자인으로 독립했다. 큰 조직에 있을 때보다 더 치열하고 자유롭게 디자인에 몰입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또 작년에는 세계 진출을 목표로 프리미엄 가구 브랜드 ‘웰즈’를 출범시켰다.

그는 “디자이너는 새로운 질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국내 사무 환경의 새로운 질서를 제시해 왔다.

그는 최근 해외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올해 일본의 도쿄 디자이너스 위크에 참여해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국내에서 경쟁 상대를 찾지 못한 그가 세계 무대에서 어떤 성과를 올릴지 기대된다.

김신 ‘월간 디자인’ 편집장 kshin@design.co.kr

사진 제공 디자인 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