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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위크엔드]日‘외톨이 마케팅’ 뜬다

입력 | 2005-12-23 03:20:00

1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일본에서 ‘외톨이 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다. 1인 숙박시설을 홍보하는 다양한 팸플릿. 사진 제공 아사히신문


《일본 사회의 특성을 나타내는 표현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나 도쿄 특파원으로 3년간 근무하면서 느낀 점은 일본이야말로 ‘외톨이의 천국’이라는 것이다. 시끌벅적한 음식점에서 혼자 식사를 해도, 바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여도 전혀 처량하지 않다. 통상 4인 1조로 경기를 하는 골프장에서도 동반자 없이 18홀을 혼자서 도는 ‘외톨이 골퍼’까지 있을 정도다.》

한국 기업에서 파견된 주재원들은 “서울에서는 혼자 식당에 가면 눈치가 보이고 궁상맞다는 생각이 들곤 하는데 일본에선 혼자서 밥을 먹는게 당연하게 여겨져 편하다”고 입을 모은다. 일본의 샐러리맨들이 빠찡꼬 만화 컴퓨터게임 등 혼자 하는 오락을 즐기는 것도 ‘외톨이 문화’를 확산시킨 요인으로 꼽힌다.

1인 고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여행, 레저, 호텔업계에서는 ‘혼자만을 위한 맞춤형 상품’이 붐을 이루고 있다. ‘오히토리사마(お一人樣·1인 고객을 뜻하는 높임말)’를 한 명이라도 더 끌어들이기 위해 혼자 오는 손님에게 특별 할인을 해 주는 업소도 늘어나는 추세다.

‘오히토리사마 향상위원회’라는 인터넷 사이트에는 혼자서 즐기기에 적격인 숙박시설 음식점 술집 미용실 마사지업소 등의 정보가 빼곡히 정리돼 있다. 직접 이용해 본 사이트 가입자들의 품평이 매출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업소 측은 1인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 안간힘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외톨이 고객의 주류는 독신 생활을 즐기는 20대 후반∼30대 초반의 여성이었지만 최근엔 30, 40대 남성 중에도 혼자 여행을 떠나거나 호텔에 묵는 이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가정에서도 기를 펴지 못하는 남성들이 그 돌파구로 자기만의 시간을 가지려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증권회사 영업맨인 A(38) 씨가 대표적인 사례. 그는 1, 2개월에 한 번은 반드시 도쿄 시내의 고급호텔에 혼자 묵는다. 호텔의 체력단련장에서 땀을 흘린 뒤 객실에서 맥주로 목을 축이고 만화책에 빠져든다. 지루해지면 호텔 구내를 어슬렁거리다 밤늦은 시간 분위기 있는 바에 들러 혼자서 위스키를 마신다.

이렇게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2만 엔 선(약 20만 원). 한 달 용돈이 6만 엔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큰 부담이지만 다른 비용을 아껴서라도 ‘호텔 투숙 프로젝트’는 거르지 않는다.

그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이런저런 상념에 젖다 보면 인생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되고, 다시 열심히 살겠다는 결심도 하게 된다”며 정신을 재충전하는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2명 이상이 여행을 떠나려면 시간을 맞춰야 하고 상대의 말에 맞장구도 쳐야 하지만 혼자라면 그런 번거로움에서 자유롭다는 것도 ‘혼자만의 시간’에 집착하는 이유다.

도쿄의 게이오프라자 호텔은 A 씨와 같은 고객을 겨냥해 오래전에 ‘나의 시간’이라는 패키지 상품을 선보였다.

여성 고객용 상품은 객실을 화려하게 꾸미고 피부 미용과 마사지 등 다양한 코스가 포함돼 있지만 남성용 패키지는 유료영화 1편을 무료로 제공하는 정도로 단순하다. 하지만 한 번 찾은 고객이 다시 찾는 사례가 늘면서 매달 50실 이상의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다.

호텔 관계자는 “남성 고객은 일단 투숙하면 바깥에 거의 나오지 않고 객실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전했다.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1시간 반 걸리는 해변의 온천휴양지 아타미에도 최근엔 혼자 당일치기 여행을 왔다가 바닷가의 정취에 심취해 즉흥적으로 호텔이나 전통여관에 투숙하는 중년 남성이 많다고 한다.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미 생활을 여럿이 같이 하기보다 혼자서 즐기는 게 더 좋다’고 응답한 남성의 비율이 1994년엔 18%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엔 23%로 늘었다.

1인 여행을 떠나는 비율도 남성이 거의 모든 세대에 걸쳐 여성보다 높았다. 25∼29세의 경우 남성의 14%가 1인 여행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해 여성(7%)보다 많았고, 30∼34세에서도 남성은 10% 여성은 5%였다.

기자도 2년 전 연말 연휴에 가족이 한국으로 일시 귀국한 시기를 이용해 1인 여행 대열에 참가한 적이 있다.

여행사의 패키지 프로그램을 통해 찾은 곳은 도쿄에서 승용차로 3시간가량 걸리는 도치기 현의 나스 고원. 일왕 부부가 휴양차 들르면서 고급 관광지로 인기를 끄는 곳이다.

처음엔 청승맞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일행 중 상당수가 외톨이 여행자여서 마음이 편했다. 호텔 측도 1인 고객이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고급 청주를 특별 서비스하는 등 세심하게 신경을 쓴 점이 인상적이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