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비눗방울에 갇히다(Bush in the Bubble)’―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21일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현실감을 잃고 있다고 보도했다. 부시의 주변에는 입에 발린 말만 하는 ‘예스맨’들뿐, 고언(苦言)을 하는 사람은 없으며 백악관에서 대통령에 대한 반대 의견은 종종 불충(不忠)으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이 잡지는 부시가 누가 뭐라 하든 궁극적으로 자신이 옳았음을 역사가 증명하리라는 믿음에 변함이 없으며 남은 3년의 임기 동안에도 크게 바뀔 듯하지는 않다고 전망했다.
비눗방울에 갇혀 있기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도 마찬가지인 듯싶다. 그의 주변에도 예스맨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청와대에서 대통령에게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린 기억도 없다. 특히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이 옳았음을 역사가 증명하리라는 믿음에 관한 한 노 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뒤질 턱이 없다. 앞으로 별로 달라질 것 같지 않은 점도 같다. 다른 점이라면 노 대통령의 임기는 2년 2개월이 남았다는 것뿐이다.
돌이켜 보면 노 대통령은 취임하면서부터 스스로 비눗방울 속에 갇혔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대통령 된 게 신기하다”는 자신의 말처럼 그는 사실 ‘준비된 대통령’은 아니었다. 시대의 바람이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불행은 그가 너무 빨리 ‘같은 코드의 비눗방울’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이다. ‘노무현과 그의 사람들’은 시대의 변화 욕구를 ‘세상 뒤집기’로 입력한 것 같다. 한번 입력된 ‘세상 뒤집기’는 수정을 거부했다. 오히려 이분법의 편 가르기로 강화됐다.
민주 국가에서 대통령은 출발부터 ‘절반의 반대자’를 안고 가기 마련이다. 노 대통령도 지난 대선에서 유효 투표의 48.9% 지지로 당선됐다. 따라서 대통령제가 비록 승자독식(勝者獨食)의 권력구조라고 할지라도 늘 절반의 반대자를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을 포용하고 설득해 지지도를 높여 가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 리더십의 요체다.
그러나 집권 3년이 저무는 지금의 정권 지지도는 20%대이다. 대선 지지율의 반 토막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현 정권이 지난 3년 동안 절반의 반대자를 줄여 가기는커녕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리게 한 결과다. 이를 두고 “대통령은 21세기에 가 있고 국민들은 아직도 독재시대의 문화에 빠져 있다”(조기숙 홍보수석비서관)거나 “참여정부의 인기가 없는 것은 노무현 정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비토 세력 때문”(이병완 비서실장)이라고 한대서야 청와대 전체가 비눗방울 속에 갇혀 있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노 대통령은 10월 말 “내년 초에 국가 미래를 위한 구상과 나의 진로를 밝히겠다”고 예고했다. 정치권의 대체적인 관측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大聯政)이 수포로 돌아가자 새로운 승부수를 던지려는 게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다시 자신만의 진정성을 앞세운 무리한 승부수를 던진다면 그것은 나라의 재앙(災殃)이 될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승부수에 골몰하기보다 자신이 갇혀 있는 비눗방울 속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눈과 귀를 멀게 하는 예스맨과 아첨꾼들은 과감하게 내쳐야 한다. 경박하고 튀는 인물을 코드가 맞는다고 내각에 앉히는 우(愚)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소명(召命) 같은 거창한 허위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과거를 통째로 부정하는 청산으로는 결코 국민 통합도, 미래의 길도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해야 한다. 더는 말을 앞세우지 말고 실천을 통해 국민 신뢰를 얻어야 한다.
머뭇거릴 여유는 없다. 내년 5월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국은 빠르게 대선 국면으로 치달을 것이다. “이 정권에 레임덕은 없다”고 흰소리를 쳐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제는 새 일을 벌이기보다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정리해 정권 실패를 최소화해야 한다. 정권 실패가 국가 실패로 이어지는 것만은 막아야 한다.
이래저래 우울한 세밑이다. 병술(丙戌)년 새해의 희망을 얘기하려면 대통령부터 비눗방울 밖으로 나와야 한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