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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이윤수]한반도 떨게 한 ‘아무르板 가설’

입력 | 2005-12-24 03:06:00


올해도 지구촌에는 리히터 규모 7.0보다 큰 지진이 11번 있었다. 지진이 육상에서 일어나는 경우에는 땅이 흔들리거나 갈라지기만 하지만, 3월 수마트라 지진처럼 바다 밑에서 발생하면 지진해일을 유발할 수 있다. 지진은 건축 시설물 붕괴, 도로 항만 파괴, 산사태, 가스 누출과 누전에 따른 화재, 전염병 등으로 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다주기도 한다.

지진은 왜 특정한 지역에서 자주 일어나는 것일까? 세계지도 위에 지난 100여 년간 지진이 발생한 위치를 점으로 표시해 보면, 이들 점은 마치 띠처럼 특정한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띠가 이어져 폐곡선으로 둘러싸여 있는 단위체를 판이라고 한다. 각각의 판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이동하는데, 이 움직임을 판구조운동이라고 한다. 이동속도는 연간 몇 cm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심각한 지진과 화산 활동은 판구조운동 때문에 판과 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하며 환태평양조산대, 히말라야-알프스조산대, 인도네시아군도 등이 대표적인 예다.

지구의 표면은 10여 개의 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반도는 유라시아판의 연변부에 속한다. 한반도에 미칠 수 있는 지진에너지의 대부분은 판 경계부에 위치한 일본 열도와 중국 대륙에서 소모되기 때문에 한반도는 상대적으로 이들 판 경계부보다 훨씬 안정된 환경에 놓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반도가 지진 안전지대라는 의미는 아니다. 인도판과 태평양판에서 전달된 동서 압축응력 등으로 인해 적지 않은 지진이 한반도에서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소위 ‘아무르판’의 경계가 한반도의 중남부를 관통한다는 일부 학자의 견해가 매스컴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아무르판은 1981년 옛 소련의 사보스틴 박사 등이 바이칼 호의 열곡대에 나타나는 일련의 활성단층대를 동아시아 지진 발생지와 연결하여 제안한 가설로, 최근 지진계측과 위성측지 연구 결과를 근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만일 이 견해가 사실이라면 판 경계부가 우리나라 성장 동력의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될 대덕연구단지, 경주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예정지, 포항공업단지, 월성원자력발전소 등에 위치하게 된다. 충남 공주-연기 행정도시 예정지도 그 근처다. 이는 국민의 생명 및 국가 안전 보장과 관련해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방진 방재 기준과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등 실로 학술적 논란을 넘어 중차대한 국가 사안으로 증폭될 수 있다.

필자가 알고 있는 한, 판이라고 하면 ①수십∼수백 km 두께의 암권 규모로 ②판의 경계부가 3가지 조건(판과 판이 충돌하는 수렴경계, 판이 생성되는 발산경계, 판이 비껴가는 보존경계)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③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엔진(맨틀대류에 의한 발산경계)을 가지고 있다. 또한 ④판 경계부를 따라서 대부분의 지진이 발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지진이 일어나는 곳이 전부 판 경계부는 아니며, 판 내부에서 일어나는 지진도 적지 않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무르판 가설의 근거로 내세운 위성측지 자료는 암권 규모가 아닌 지표 지각의 변위성분을 나타내는 것일 수 있다. 또한 한국과 중국 화베이 지방의 지진은 판 경계부가 아니라 판 내부의 지각 변형일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아무르판의 판 경계부나 판 경계조건조차 불명확한 곳이 많다. 따라서 아무르판 가설이나 ‘아무르판 경계부가 한반도를 관통한다’는 견해를 과장하거나 성급히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반도의 지체 구조 환경은 짧은 시간에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위 아무르판의 실체와 한반도의 지체 구조적 관련성에 관해 학술적인 검증부터 실시하고, 차분히 논의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윤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선임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