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 사회를 구휼(救恤)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너무 많은데 어느 것을 내고, 어느 것을 내지 말아야 할까?
지난 주말 지상파 TV에는 성탄 특집이 풍성하였다. 영화 다큐멘터리 드라마 등 경쟁적으로 대형 기획물 편성에 힘썼다.
그중 눈길을 끈 프로그램은 ‘성탄특집-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25일 밤 11시 55분)이었다. 많은 특집이 노래하고 춤추고 먹고 마시는 ‘놀이판’인 데 비해 이 프로그램은 삶과 이웃을 새삼 일깨운 프로였다. 부제 ‘열다섯 아이 예은이의 특별한 크리스마스’가 말해주듯 이번 특집에는 정신지체 2급 판정을 받은 희귀병 소녀의 불행한 이야기를 담았다.
예은이의 아버지는 니트 공장에서 일하면서 술잔의 절반을 눈물로 채우고 있고 어머니는 한 달에 20만 원을 받는 부품조립을 부업으로 한다. 큰딸 예은이는 뇌 이상으로 경기(驚氣)에 시달리며 “돈 없이는 못살아”를 늘 노래하는 등 비정상적이다. 막내 역시 정신지체 2급이고 둘째 딸 예림이만 정상적이다.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 둘째는 날이 갈수록 집과 가족이 싫어지고 있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이들의 치료와 재활을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예은이의 가정이 어둡고 답답한 터널을 지나 꿈과 희망을 다시 갖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성탄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랑과 용서 그리고 나눔이다. 그런 뜻에서 구호보다 실천을 앞세운 ‘성탄특집-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은 감동적이었다. 따뜻한 마음이 넘치면서도 냉정을 잃지 않고 프로그램을 이끈 황현정 아나운서의 진행 솜씨 역시 돋보였다.
예은이 가족은 텔레비전 보도로 새로운 삶을 갖게 됐지만, 이 프로는 몇 가지 언론의 윤리 문제를 남긴다.
질병을 앓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의 이야기를 방송이 다룰 만큼 가치를 갖고 있다면 그 기준은 무엇인가. 희귀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는 수없이 많은데 텔레비전은 이들을 모두 다루어야 하는가.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였던 ‘성덕바우만’ 사건이 좋은 예일 것이다. 백혈병을 앓고 있던 그는 TV 보도 덕택에 한국인의 골수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 만약 같은 젊은이가 나타나면 똑같이 보도해야 할까.
제이 로젠은 무관심하고 자기만족적이며 냉소적인 사람들을 언론의 힘을 이용해서 공공의 영역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작업을 공공 저널리즘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이를 위해 사별로 내규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우룡 한국외국어대 언론정보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