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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연애의 전설 vs 작업의 기술

입력 | 2005-12-29 03:01:00


《1950년대와 2000년대의 연애 기술은 같을까 다를까.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은 1956년 영화로 만들어져 장안의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영화 ‘자유부인’의 DVD를 ‘고전영화 컬렉션’의 하나로 내놨다. 대학 교수와 사회 지도급 인사 부인들의 외도와 춤바람을 정면으로 다룸으로써 보수적인 당시 사회에서 뜨거운 논란의 대상이 된 ‘자유부인’. 이 영화 속 대사를 최근 개봉된 멜로영화 ‘애인’,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 영화 ‘작업의 정석’과 비교하면 50년의 간극이 무척 클 때도 아주 좁을 때도 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 영화 속에 나타난 ‘작업’의 기술들을 비교 분석한다.》

① 남자의 작업기술=‘자유부인’의 바람기 있는 총각 춘호는 영어를 멋스럽게 써가면서 자신이 자유로운 영혼임을 은근슬쩍 강조한다. 반면 ‘애인’의 남자는 단도직입적이며, ‘작업의 정석’ 속 민준은 기상천외한 비유법을 구사한다. 춘호와 민준이 느끼한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자유부인애인“아주머니, 한번 슬슬 걸어보실까요.”(춘호) “어마, 여기서 적선동이 어딘데 걸어가는 거야?”(선영) “달빛도 고요한데 한 30분 저를 즐겁게 해 주십시오.”(춘호) “춘호는 명옥이랑 사랑하는 사인가?”(선영) “그저 프렌드죠.”(춘호) “그럼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인가?”(선영) “사랑하는 사람은 단 하나일 뿐입니다. 프렌드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죠.”(춘호) “그렇지만 춘호가 명옥이를 사랑하는 증거(키스하는 장면)를 보았는걸?”(선영) “아, 그걸 보신 모양이군요. 그야 프렌드로서의 작별인사죠.”(춘호) “나 같은 늙은이도 춤을 배울 수 있을까?”(선영) “왜 늙은이 늙은이 하십니까? 아주머니는 젊고 아름답고 양장이라도 하시면 아주 스타일이 베리 굿일 겁니다.”(춘호)(우연히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친 남녀.)“지하 3층까지 우리 둘만 내려가면 제가 술 한 잔 사죠.”(남자) “왜 나한테 술을 사죠?”(여자) “이유를 말해야 하나요?”(남자) “작업 거는 거예요?”(여자) “(작업을) 걸면 걸려요?”(남자)작업의 정석“인도에 직접 주문해서 받은 차예요. 아무래도 국내에서 구하는 차들은 유통과정이 길다 보니 향이 많이 손실이 되어서….”(민준) “….”(지원) “유럽에선 오늘처럼 보름달 뜨는 밤에 은 스푼으로 홍차를 저으면 귀여운 요정이 나온다는 전설이 있죠. 하지만 오늘은 마법이 통하질 않겠네요. (여자를 쳐다보며) 벌써 제 눈앞에 요정이 있으니까요.”(민준)

② 여자의 작업기술=50년의 세월이 무색할 정도로 ‘자유부인’은 급진적이다. ‘자유부인’ 속 중년부인 윤주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는 ‘인파이터’인 반면, ‘애인’ 속 여자는 머뭇거리는 체 한번 빼보면서 상대의 전투 욕구를 부채질하는 ‘아웃복서’다.

자유부인애인“마담, 우리 사업의 성공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한번 시골로 소풍 나가지 않으시렵니까?”(백광진) “소풍이요? 피크닉이 더 좋지 않을까요? 그러지 마시고요. 온천장으로 가자고 확실히 아주 똑바로 말씀하시지요.”(윤주) “어허허, 마담….”(백광진)“괜찮을까요? 아니,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미안해요.”(여자) “나한테 미안할 거 없어요. 어떻게 하고 싶어요?”(남자) “모르겠어요.”(여자) “우리 한번 저질러 보죠.”(남자)

③ 걸 토크(Girl Talk)=‘자유부인’에서 동창인 선영과 윤주는 여성의 권리 신장이 화두. 그들의 춤바람과 외도가 여권 신장의 연장선임을 암시한다. 반면 ‘작업의 정석’ 속의 친구인 수진과 지원은 오로지 ‘목적으로서의 섹스’를 논한다.

자유부인작업의 정석“아이, 이 망할 것. 어쩜 돈벌이 구멍을 그렇게도 잘 뚫니?”(선영) “요는 돈이야. 돈만 있고 보면 세상만사 안 되는 게 없거든. 특히 우리 여성들은 말이야, 남편의 압제를 받지 않으려면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 거야.”(윤주) “어마나, 넌 이제 못 할 말이 없구나.”(선영) “너나 나나 이젠 시들어 가는 장미야. 이제 남은 건 남은 인생을 어떻게 엔조이 하느냐가 문제지.”(윤주)“민준 씨랑은 아직 안 잤다며?”(수진) “그런데?”(지원) “근데 왜 네 피부에선 날이면 날마다 밤이면 밤마다 최소 오르가슴 10회 이상 겪는 복 많은 년들 특유의 광채가 나느냔 말이야!”(수진) “옷 다 벗고 엉키고 뒹구는 게 섹스의 다가 아냐. 때론 남자가 나를 간절히 원하게 만드는 거, 상대의 눈동자나 입술을 슬쩍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섹스가 될 수 있는 거야.”(지원) “너 변태니?”(수진) “아마 민준 씨도 지금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을 걸?”(지원)

④ 밀고 당기기=수컷의 환상적인 호흡 조절은 고금(古今)이 다르지 않다. ‘자유부인’이나 ‘애인’의 남자들은 예외없이 “나의 소유권을 당신에게 넘기겠다”는 사탕발림을 통해 여성의 주체적 욕망을 자극하고 일깨우는 고전적 테크닉에 의존한다.

자유부인애인“마담!”(춘호) “왜 이러는 거야.”(선영) “마담! 아이 러브 유. 마담, 오늘 저녁엔 저를 맘대로 이용해 주십시오.”(춘호) (이어 두 사람은 볼을 맞대고 비비며 쓰러진다.)“6시 전에 출발해야 된다고 그랬나?”(남자) “그동안 뭐하지?”(여자) “날 갖고 놀래?”(남자) “왜 그러고 싶어?”(여자) “그냥 그러고 싶네. 날 좀 갖고 놀아주라.”(남자) “실컷?”(여자) “실컷.”(남자)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