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신경과학센터장은 생쥐의 학습능력과 운동능력을 담당하는 뇌파가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뇌파를 측정하면 어느 분야에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동물의 뇌에는 수많은 신경세포가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다. 신경세포들 간에 ‘전기신호’를 통해 정보가 전달되면서 뇌의 특정 부위에서는 학습이나 운동 등의 기능이 수행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류를 뇌파라고 부른다. 동물 머리에 전극을 붙이고 전류를 증폭시키면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뇌파 그래프가 그려진다.
그동안 뇌파는 주로 수면의 패턴이나 치매 같은 뇌질환의 원인을 찾기 위해 탐구돼 왔다. 그런데 최근 국내 연구진이 뇌파를 측정하면 공부를 잘하는 머리인지 아니면 운동에 재능이 뛰어난 머리인지 알 수 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제시해 화제다. 물론 생쥐를 대상으로 한 실험이기 때문에 아직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화제의 주인공은 신희섭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신경과학센터장. 그는 치매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연구 도중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보통 치매에 걸린 생쥐(사람도 마찬가지)는 뇌의 신경세포가 아세틸콜린이라는 물질을 잘 분비하지 못한다. 연구팀은 유전자를 변형시켜 이런 결함이 있는 돌연변이 생쥐를 만들고 뇌파를 측정했다.
신 센터장은 동물의 ‘집중력’을 담당하는 해마 부위의 뇌파에 관심을 가졌다. 대부분의 포유류는 이곳에서 3∼10헤르츠(Hz·1초 동안 전자기파가 진동하는 수)의 세타(θ)파가 나타난다고 보고돼 있다. 또 이 세타파는 (정체를 알 수 없지만) 1형과 2형 두 가지가 존재하며 학습할 때든 운동할 때든 정신을 집중하는 상황에서 발생한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돌연변이 생쥐의 세타파를 측정하자 2형은 제거되고 1형만 관찰됐다. 연구팀은 1형의 정체를 알기 위해 두 가지 실험을 수행했다. 지능을 확인하기 위한 수중미로찾기 실험과 운동능력을 측정하기 위한 회전막대 실험이다.
먼저 수중미로찾기 실험. 생쥐를 불투명한 액체를 가득 채운 커다란 그릇에 빠뜨린다. 그릇의 어느 한 지점 물 밑에는 발이 닿을 수 있는 ‘섬’이 만들어져 있다. 보통 생쥐는 한 번 이 섬을 찾은 경험이 있으면 다시 빠졌을 때는 금세 이곳으로 헤엄쳐 온다. 하지만 돌연변이 생쥐는 아무리 실험을 반복해도 섬을 찾지 못했다.
다음은 회전막대 실험. 보통 생쥐의 운동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막대 위에 생쥐를 올려놓고 속도를 높여가면서 막대를 회전시킨다. 이때 얼마나 오래 버티는지가 운동능력의 척도다. 실험 결과 보통 생쥐는 막대 위에서 170초 정도 버틴 데 비해 돌연변이 생쥐는 270초를 견뎌냈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13일자에 소개됐다.
신 센터장은 “돌연변이 생쥐는 서너 차례 훈련 후부터 보통 생쥐보다 뛰어난 운동능력을 보였다”며 “최소한 50% 이상 능력이 향상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연구로 2형 세타파는 학습기능에 필수적이지만 운동기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며 “학습과 운동 기능은 뇌의 다른 작용으로 이뤄진다는 점을 시사한다”고 덧붙였다.
최소한 생쥐의 경우 세타파의 패턴을 분석하면 머리가 똑똑한 종류인지 아니면 운동을 잘하는 쪽인지 알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사람도 생쥐처럼 세타파가 두 가지 존재한다. 조만간 뇌파 분석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가려낼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