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영(53) 경찰청장의 중도하차에 대해 경찰이 당혹해하고 있다. 한편으론 반발하는 분위기가 만만치 않다.
경찰 안팎에서는 “누가 후임 청장이 되든지 흐트러진 내부를 추스르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예상했다.
▽후임은 누구=경찰청장은 경찰위원회의 동의와 국회 청문회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관례상 치안정감을 승진시켜 발탁했다.
치안정감 4명 중 이미 사표를 제출한 이기묵(李基默·56)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제외하면 최광식(崔光植·56) 경찰청 차장, 이택순(李宅淳·53) 경기지방경찰청장, 강영규(姜永圭·57) 경찰대학장 등 3명이 유력하다.
최 차장은 전남 고흥 출신으로 허 청장 취임과 함께 본청 차장이 됐다. 수사와 기획 분야를 두루 거쳤다.
업무 연속성과 조직의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선택할 경우 적합자라는 평가가 많다. 김대중(金大中) 정부 시절의 옷 로비 사건 때 청와대 특명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청 조사과장(현 특수수사과장)이었다.
서울에서 태어난 이 경기청장은 경찰 내부에서 보기 드문 서울대 출신. 카리스마는 다소 부족하지만 일처리가 꼼꼼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행정고시 특채로 경찰에 입문한 뒤 현 정부 들어 경남지방경찰청장과 대통령치안비서관을 지냈다. 올 1월 치안정감으로 승진했는데 이해찬(李海瓚) 국무총리가 용산고와 서울대 1년 선배인 점이 인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을 끈다.
경남 합천 출생인 강 대학장은 경찰청 경비과장, 서울지방경찰청 기동단장, 101경비단장(청와대 외곽경호 담당), 경찰청 경비국장을 차례로 지냈다. 까다로운 경비업무를 무난히 처리했지만 후보자 중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은 것이 부담.
법적으로는 이승재(李承栽·52) 해양경찰청장을 전보시키거나 치안감을 두 단계 승진시켜 임명하는 인사도 가능하다.
▽경찰 반발, 농민단체 환영=허 청장을 지지하던 일선 경찰관들은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경찰 내부 전산망에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우리를 버렸으니, 이제 우리가 그들을 버릴 차례’ ‘이 나라에는 법치가 없다’는 등 격한 글들이 쏟아졌다.
경찰청 관계자는 “고의적인 살인사건도 아닌데 경찰 1, 2인자가 동시에 물러난 일은 전례가 없다”면서 “대통령도, 청장도 법 아래 있는 분들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지 모르겠다”고 난감해했다.
농민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은 적극 반겼다. ‘고(故) 전용철 홍덕표 농민살해규탄 범대책위원회’는 29일 “국민의 요구대로 허 청장이 사퇴했기 때문에 그동안 미뤄 왔던 장례 절차를 진행한다”고 밝혔다.
농민단체는 이날 오후 경찰청사와 청와대 앞에서의 농성을 중지하고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장례를 치를 계획이다.
참여연대는 “경찰청장의 임기제가 자리 보존을 위한 제도가 아님에도 허 청장이 사태가 악화될 때까지 버틴 점은 유감”이라고 말했고 인권실천시민연대는 “경찰이 말로만 인권경찰이 아니라 진정한 인권경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정원수 기자 needjung@donga.com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