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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외국계 컨설턴트

입력 | 2005-12-31 03:00:00

12월 30일 서울 중구 태평로 보스턴컨설팅그룹 본사에서 컨설턴트들이 고객 기업을 위한 경영전략을 논의하고 있다. 전영한 기자


1998년 국내 재계의 최대 뉴스 가운데 하나는 ‘반도체 빅딜’이었다. LG반도체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를 통합하는 작업으로 1년 내내 시끄러웠다.

‘반도체 빅딜’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은 미국 컨설팅회사 ‘아서 D 리틀’. LG와 현대 가운데 누가 통합 반도체회사를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 역할을 맡았다. 이 회사의 판단에 따라 결국 LG는 그룹의 염원이 담긴 반도체 사업을 접어야 했다.

반도체 산업은 명실상부한 한국의 대표산업. 외환위기라는 특수 상황이라 해도 한국 반도체 산업의 명운을 좌우할 중대 결정을 일개 컨설팅회사의 손에 맡긴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었다. 한국 사회는 이 결정에 당혹해할 수밖에 없었다.

○ 글로벌화와 함께 등장한 컨설턴트들

외국계 컨설팅회사와 컨설턴트들이 한국에서 힘을 얻어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 계기는 한국사회의 개방화, 국제화 추세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외국 컨설팅회사가 한국에 공식 진출한 것은 1986년. 앤더슨컨설팅(현 엑센추어)이 한국 사무소를 설립했다.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이른바 세계 3대 ‘전략 컨설팅회사’로 꼽히는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BCG), 베인&컴퍼니가 차례로 들어왔다. 1980년대 후반부터 컨설턴트로 일했던 엑센추어 이재한(李在漢) 부사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도 ‘네가 뭘 안다고’ 하는 식의 반응이 많았다”며 “프로젝트를 제안할 때 컨설팅이 무엇인지 설명하는 데 시간을 다 써야 했다”고 말했다.

컨설팅회사에 대한 이런 시각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180도 바뀌었다.

BCG 이병남(李秉南) 부사장은 “글로벌스탠더드가 한국에 밀려오고, 또 강요되면서 컨설팅회사의 영향력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2000년 이후에는 컨설팅 업계가 질적으로 성장했다. 10년 이상 한국 시장에서 경험을 쌓은 한국인 컨설턴트가 배출되면서 한국의 최고경영자(CEO)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이해하게 됐고, 기업에 도움이 되는 보고서를 만들기 시작한 것.

○ 힘의 원천은…

외국계 컨설팅회사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근원은 무엇일까.

맥킨지 최정규(崔晸圭) 디렉터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통해 축적한 ‘지식’이 영향력의 원천이라고 분석했다. 세계 각국에서 컨설팅을 하면서 수십 년 동안 축적한 데이터베이스(DB)가 위력을 발휘한다는 것. 한국 기업이 어떤 상황을 제시해도 해법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는 뜻이다. ‘본사’가 가장 든든한 배경인 셈.

컨설팅회사의 조직문화를 살펴보면 한국 사회의 기존 엘리트 그룹과 다른 점이 눈에 띈다. 조직 내에 학연이나 지연을 통한 ‘줄’을 찾기 어렵다. 특유의 성과주의 문화 때문이다.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인 베인&컴퍼니 박철준(朴哲濬) 대표는 “15년째 직원 채용을 맡고 있지만 개별 컨설턴트의 고향이나 고교, 집안 배경을 모른다”며 “컨설턴트는 오직 실력과 성과로 평가될 뿐”이라고 말했다.

컨설턴트들은 대부분 국내외 명문대를 나왔고 경영학 석사학위(MBA)가 있으며 문제 해결 능력이 뛰어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다 보니 기업에서 자주 ‘러브콜’을 받는다. 대기업이나 투자은행(IB), 벤처기업의 CEO나 전략기획 담당 임원 가운데 컨설턴트 출신이 상당히 많다. 컨설턴트들이 젊은 나이에 중용되는 건 초보 컨설턴트 시절부터 CEO의 입장에서 상황을 분석하고 의사 결정을 하는 훈련을 받기 때문.

컨설턴트 출신 기업인들은 모임을 만들어 현직 컨설턴트들과 긴밀하게 교류한다. 컨설턴트 사회에선 지연이나 학연보다 회사가 연결고리가 된 ‘직연(職緣)’이 우선이다.

○ 과거와 미래

외국계 컨설팅회사들도 한국 시장에서 상당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LG전자는 1990년 초반 에어컨 사업이 적자를 거듭하자 대형 컨설팅회사로부터 “에어컨 사업을 포기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에어컨 담당자들은 “하지 말라니 더 하고 싶다”며 고집을 부려 에어컨 사업을 밀어붙였다. 결국 세계시장을 휩쓴 ‘휘센 신화’를 이뤄냈다.

컨설턴트들은 이런 실패 사례를 놓고 무조건 ‘컨설팅회사 책임론’을 제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BCG 이 부사장은 “골프로 치면 컨설팅회사는 데이비드 레드베터 같은 티칭프로 역할”이라며 “골퍼의 성적이 나쁘다고 모든 책임을 티칭프로에게 떠넘기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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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 컨설턴트 출신 명사는

세계적인 지성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톰 피터스는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이다. 그가 맥킨지 파트너 시절에 쓴 ‘초우량 기업의 조건’은 지금까지 수백만 부가 팔렸고 미국 포브스지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경영 서적’으로 뽑혔다.

일본의 세계적인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도 맥킨지 출신. 그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원자력공학 박사 학위를 딴 뒤 히타치 연구원 등을 거쳐 맥킨지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장을 지냈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 출신으로 기업인들에 대한 컨설턴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

■ 국내 현황은

한국에는 세계 3대 ‘전략 컨설팅회사’로 꼽히는 맥킨지, 보스턴컨설팅그룹, 베인&컴퍼니가 모두 진출해 있다. ▽맥킨지=올해 설립 80주년을 맞은 맥킨지는 1991년 서울사무소를 설립했다. 경영학석사(MBA)들이 가장 선호하는 컨설팅회사로 GE와 함께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를 가장 많이 배출한 회사로도 유명하다. 한국에는 파트너 10명을 포함해 100여 명이 근무한다.

성낙양(成洛陽·42) 야후코리아 대표와 장윤석(張允碩·39) 마스타카드 코리아 대표, 소버린과 SK의 싸움을 진두지휘했던 유정준(兪柾準·44) SK㈜ 전무, ‘천재소녀’ 윤송이(31) SK텔레콤 상무 등이 이곳 출신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1963년 미국 보스턴에서 설립됐다. 현재 세계 36개국 60개 사무소에서 5000여 명의 컨설턴트가 근무한다. 1994년 설립된 한국법인에는 100여 명의 컨설턴트가 있다.

이재현(李在現·46) 옥션 대표와 윤석환(尹錫煥·35) 웅진그룹 기획조정실장이 이곳 출신.

▽베인&컴퍼니=1973년 설립됐고 한국에는 1994년 진출했다. 사모펀드(PEF)가 가장 선호하는 컨설팅회사로 꼽힌다. PEF가 주도하는 인수합병(M&A) 가운데 세계시장의 50%, 한국시장의 70%에 참여하고 있다.

허영호(許永鎬·42) JP모건파트너스 대표, 김승종(金承鍾·36) 메트로신문 사장, 오규석(吳圭錫·43) 하나로텔레콤 전무 등이 이곳 출신.

▽기타=정태수(鄭泰秀·51) KT 전무는 ‘반도체 통합’ 당시 아서 D 리틀 한국지사장이었고 최근 LG그룹 사상 최연소 임원으로 화제를 뿌린 LG화학 안세진(安世珍·37) 상무와 이현승(李炫昇·40) GE코리아 전무는 AT커니 출신이다.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