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로테르담 시 전경. 백조라는 애칭의 사장교인 에라스무스 다리가 시의 남과 북을 잇는다. 다리 오른쪽이 ‘남쪽의 길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개발된 지역이다. 사진 제공 서현 교수
《서울지하철 2호선 구로공단역의 이름이 바뀌었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이 되었다. 역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고 실제 입주해 있는 산업체의 모습이 달라진 것이다. 산업의 변화는 도시를 바꿔 놓는다. 연탄이 사라진 것은 도시 풍경에서 연탄 굴뚝을 없앤 데서 끝나지 않고 탄광도시 강원 정선군 사북을 카지노장으로 만들었다.
제조업을 엔진으로 도시가 발전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위기의 도시들은 새로운 엔진을 장착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대개 문화도시, 관광도시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고 있다. 한국의 도시들도 영화세트장과 먹을거리, 축제의 깃발을 휘날리며 문화, 관광의 격전장으로 뛰어들었다.
새로운 도시의 시대가 왔다. 인간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 그 위에 인간을 중심으로 한 문화가 차곡차곡 쌓여 가는 도시가 우리가 그리는 모습이 될 것이다.
본보의 신년기획 ‘도시, 미래로 미래로’는 산업화 이후 새로운 방식으로 경쟁력을 갖게 된 도시들을 분석할 계획이다. 도시·건축 전문가들과 본보 기자들이 특별취재단을 이뤄 세계 20여 개 도시를 찾아간다.》
네덜란드 제2의 도시인 로테르담. 도시를 관통하는 마스 강 남북을 잇는 다리를 로테르담 시민들은 ‘백조’라고 부른다. 다리의 공식명칭은 에라스무스. 이 도시 출신인 중세의 인문학자 에라스무스를 기려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의 올림픽대교와 비슷한 형식의 사장교(斜張橋)인 이 다리는 1996년 준공 이후 명실상부한 시의 상징이 되었다.
다리에는 자동차, 전차, 자전거, 보행인의 통로가 구분돼 있다. 다리는 넓지만 길은 좁다는 자동차 운전자들의 불평도 있지만 자동차가 다른 공간을 침범할 수는 없다.
에라스무스 다리의 북쪽 강변에는 1940, 1945라는 숫자가 새겨진 조형물이 서 있다. 로테르담이 독일에 침공 당해 나치의 지배를 받던 기간이다. 1940년 5월 14일. 바로 이날 60대의 나치 폭격기가 로테르담 도심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로테르담은 옛 도시를 복구하지 않았다. 20세기 초반의 실험적인 이론을 통한 도시계획으로 전혀 새로운 도시를 만들기 시작했다. 여느 유럽의 역사 도시와 달리 로테르담이 넓고 조직적인 도심 도로체계를 갖게 된 것은 바로 이 결과물이다.
○ 끊임없는 실험의 길
로테르담은 라인 강 어귀를 틀어쥐고 생긴 도시다. 유럽이 세계로 나가는 길목이었던 것이다. 위치의 장점을 등에 업고 로테르담은 1962년 이후 물동량 기준으로 세계 최대의 항구도시로 군림해 왔다. 그러나 2002년에는 싱가포르에, 2004년에는 중국 상하이(上海)에 추월당해 3위로 내려앉았다. 항구가 수축한 것이 아니고 동아시아의 경제규모가 빠르게 커진 것이다.
로테르담은 변하고 있다. 세계 항구의 수도에서 건축 실험의 수도로 바뀌고 있다. 현대건축으로 문화도시로서의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건축 양식의 전통이 아닌 건축 실험의 전통이 폭격 뒤에도 뚜렷이 살아남았다.
세계 최초로 근대적 보행자 전용 가로를 만든 도시가 바로 로테르담이다. 20세기 초반 열악한 노동자들의 주거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주거안을 실현한 곳이 로테르담이다.
새로운 도시에 대한 생각이 끊임없이 로테르담의 건축가들에게서 공상처럼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건축에 대한 전통이 폭격 이후 이 도시를 복원이 아닌 실험의 길로 인도했다.
국립 네덜란드건축협회(NAI)가 수도인 암스테르담이 아니고 로테르담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이 도시가 현대건축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화물선에 얹힌 세계가 로테르담의 항구를 통해 드나들었다면 지금 세계의 건축은 이 네덜란드건축협회로 드나들고 있다. 세계 최대의 건축박물관을 자임하는 이 협회는 전시, 출판을 통해 로테르담을 건축의 실리콘밸리에서 건축의 수도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로테르담 건축비엔날레는 이런 배경으로 2003년부터 개최되고 있다.
네덜란드의 젊은 건축가들은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다. 이들이 전시회나 저술을 통해 끊임없는 도시와 건축의 대안을 만들도록 중앙정부가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로테르담은 그 꿈을 펴 보이는 장소가 되고 있다.
모든 실험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모험이 박수갈채 속에 마무리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실험 없이 결과물을 만들 수는 없다.
‘방랑하는 네덜란드인’의 전통이 로테르담에서 건축으로 표현되고 있다. 로테르담의 실험적인 젊은 건축가들은 지금 세계의 현대건축을 장악해 나가고 있다.
로테르담 시 도심 블라크 역 앞 육교 위에 지어진 큐브 모양의 아파트. 건축가들의 실험에 기꺼이 동참하는 로테르담 시민들의 열성 덕분에 완공도 되기 전에 모두 분양되는 인기를 누렸다. 사진 제공 서현 교수
○ 로테르담은 건축가들의 캔버스
로테르담에 덩치 큰 백인은 60만 명 남짓한 시 인구의 3분의 1에 지나지 않는다. 모로코, 터키, 인도네시아를 비롯해 160개국에 이르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이 도시에 살고 있다. 국적, 인종, 종교, 가치관이 종횡무진으로 교차하는 이들이 모두 로테르담의 시민이다.
로테르담에서 도시정책의 근간은 이런 도시구성원들이 얼마나 잘 섞여 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도심에 젊은 저소득층만 모여 산다는 자각은 도심 가까운 강변에 고급 아파트를 짓도록 장려하는 정책을 만들었다.
다양성의 추구는 건축 스타일에도 적용된다. 이 도시에서 건축가는 도시라는 캔버스 위에 마음껏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비유된다.
일반인의 눈으로 보면 다소 기괴하기도 하고 선뜻 마음에 와 닿지 않는 건물이 유독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건축가들이 자신의 실력과 구상을 실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보장된’ 무대라고 할까.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로테르담 지하철 블라크 역 앞에 있는 큐브하우스다. 1984년 해체주의 건축가 피트 블룸(1934∼1999)의 설계로 만들어진 이 기괴한 아파트는 사각 기둥 위에 정육면체가 올려져 있는 형태. 모두 38개의 작은 큐브(1개 큐브가 집 1채)와 2개의 대형 큐브, 14개의 상점 및 사무공간이 서로 맞물려 구성된 작은 아파트 단지다.
이 정육면체의 공간에 사람이 산다는 것도 놀랍지만 단지가 도로를 가로지르는 육교 위에 건설됐다는 점도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일. 그러나 미처 완공되기도 전에 분양이 모두 끝난 ‘대박’ 아파트이기도 하다.
건축가들의 실험적인 시도를 로테르담 주민들이 기꺼이 이해하고 함께 즐긴다는 점이 바로 이곳에서 새로운 건축 실험이 끊임없이 이뤄질 수 있는 원동력인 것이다.
각각의 큐브, 즉 아파트는 3층으로 이뤄졌으며 모두 합쳐 30평(100m²) 정도의 크기. 중앙의 나선형 계단이 아래 층 입구에서 3층까지 관통해 있고 그 주위를 돌며 식당, 거실, 침실 등이 배열된 구조다. 주로 1층은 거실과 식당 등으로, 2층은 서재 침실 욕실 등이, 3층은 온실이나 차를 마시는 공간으로 활용된다. 피라미드 2개의 밑변을 붙여 놓은 모양이라 3층 공간은 협소하지만 사방이 모두 창문인 특징을 살려 침실로 쓰는 사람도 있다.
큐브하우스의 주민인 에이블린(32·여) 씨는 “여기서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상상력과 적응력”이라고 말했다. “한 사람이 간신히 누울 수 있는 모서리 공간에 부엌을 배치하려면 많은 상상력이 필요하다. 사랑, 유연성, 적응, 창조, 재미 등이 바로 이곳이 주는 매력”이라고 말했다.
로테르담=서 현 교수 한양대 건축학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로테르담의 건축가들
20세기 초반부터 로테르담은 세계 건축계의 중심에 있었다. 암스테르담에 있는 옛 증권거래소를 설계한 베를라헤나 화가 몬드리안과 함께 ‘데 스테일(신조형주의)’운동을 일으킨 반 두스뷔르흐, 리트벨트 등이 세계 건축계에 ‘네덜란드적인 것’의 이미지를 심었다.
로테르담이 세계 건축계의 메카라는 것은 이곳을 근거로 활동하는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면면으로도 확인된다. 그중에서도 손꼽히는 인물이 로테르담에 본사를 둔 OMA(Office for Metropolitan Architecture)의 공동 설립자이자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램 콜하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네덜란드 대사관 설계로 올해 유럽연합(EU) 건축상을 수상한 램 콜하스와 OMA는 건축과 도시계획 분야의 선두그룹이다. 그가 포르투갈 제2의 항구도시인 포르투에 설계한 콘서트홀 ‘카사 다 무지카’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로스앤젤레스의 디즈니 홀, 한스 샤로운의 베를린 필하모닉 홀과 함께 지난 100년간 지어진 콘서트홀 중 가장 독창적인 것”이라고 평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 미술관과 2005년 8월 개관한 서울대 미술관도 그의 손길이 거쳐 갔다.
암스테르담 오소도프 지역의 실버타운 보조코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설계그룹 MVRDV도 로테르담의 건축가들 중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건물 옆면이 마치 성냥갑이 튀어나오듯 불규칙적으로 돌출한 형태의 이 건물은 무질서 속의 조화가 백미. MVRDV는 구성원인 위니 마스, 야코프 반 리스, 나탈리 드 브리스 3인의 이름 머리글자를 모은 것이다.
이들은 최근 경기 안양시에서 열린 제1회 안양공공예술 프로젝트에 15m의 전망탑을 출품해 2006년 1월 일반 공개를 앞두고 있다.
로테르담 해안과 항구 개발 프로젝트, 싱가포르 부오나 공원, 영국 런던의 칙스윅 공원 등을 설계한 건축그룹 ‘West 8’도 주요 로테르담 인맥이다.
로테르담=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서현(43·한양대 건축학부) 교수
서울대 건축학과, 대학원 졸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석사
저서 ‘그대가 본 이 거리를 말하라’ 등
○이종호(49·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
한양대 졸
예술종합학교 sa도시건축연구소장
대표작 박수근미술관 등
○이영범(43·경기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 건축학과, 대학원 졸
영국 AA스쿨 박사
‘도시연대’ 커뮤니티 디자인센터장
○정현아(36·DIA건축연구소 대표)
홍익대, 대학원 졸
미국 컬럼비아대 건축대학원 석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