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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심규선]‘교육민주화선언’ 20년, 그리고 전교조

입력 | 2006-01-02 03:00:00


2006년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에도 의미 있는 해가 될 것 같다. 엄혹했던 5공하에서 평교사들이 집단적인 의사 표시로 전교조 결성의 길을 닦은 ‘교육 민주화 선언’을 한 지 꼭 20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1986년 5월 10일은 토요일이었다. 그날 오후 서울 종로2가 YMCA 강당에서는 서울지역 초중고교 교사 400여 명이 ‘제1회 교사의 날’ 행사를 열고, ‘교육 민주화 선언’을 발표했다. 이날 집회는 교육 당국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현장에는 정보를 수집하러 나온 서울시교위(현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도 여럿 눈에 띄었다.

취재를 마치고 서울시교위로 들어가다 정문에서 고위 간부를 만났다. 그는 “오늘 모임에 교사는 별로 없었다며…”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바를 걸친 사람들이 많았다던데, 그런 사람들은 교사가 아닐 거야”라고 말했다. 그렇게 보고를 받은 모양이었다.

집회를 준비했던 교사들에게 이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러자 흥분했다. “재직 학교와 이름을 적은 명단이 있으니 가져오겠다. 신문에 실어도 좋다.” 이튿날 그들은 정말로 명단을 갖고 왔다. 당시로서는 어떤 징계도 각오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본인들의 허락을 얻지 못했다”며 명단을 다시 찾아갔다. 돌려주기 전에 확인해 보니 ‘잠바를 입은 사람들’도 모두 교사였다.

그로부터 20년. 교사라는 신분조차 부인당하면서도, 징계를 두려워해 몸을 사려야만 했던 시절은 이제 옛날이야기가 됐다. 교육 당국이 오히려 전교조의 눈치를 봐야 하는 요즘이다.

전교조의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교육단체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웃자랐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1989년 창립 선언문에서 “그동안 독재정권과 문교부(현 교육인적자원부), 대한교련(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등 교육 모리배들은 우리의 참뜻과 순결한 의지를 폭압적으로 왜곡하고 짓밟아 왔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전교조가 결성된 지 20년도 채 안돼 전교조의 대항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아이러니다. 새로운 교원단체의 창립 선언문에서 전교조가 ‘교육 모리배’라고 비판받지 말란 보장이 없다. 전교조는 이 대목에서 힘과 조직력을 앞세워 정치투쟁이나 권익보호에만 몰두해 온 때문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전교조의 저변에는 1982년에 만들어진 ‘한국YMCA중등교육자협의회’의 산발적인 교육 민주화 의지와 1985년의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드러난 급진성, 1986년의 ‘교육 민주화 선언’과 ‘민주교육협의회’의 집단적 의사 표시, 1987년에 결성된 ‘전국교사협의회’의 노조 창립 강행논리 등이 혼재해 있다. ‘참교육’이냐, ‘의식화 교육’이냐는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를 덮어 줬던 것이 ‘순수성’이었다. 그런데 요즘 전교조에는 그런 순수성이 보이지 않는다.

흔히들 전교조에 초심(初心)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초심은 전교조 출범 당시에 공감을 얻었던 학생 중심의 교육 민주화 운동과 교육여건 개선 활동 등을 뜻하는 것 같다. 교사들은 ‘초심’으로 지지를 얻어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요구하고, 교육행정의 비민주성을 질타하며, 자주적인 교원단체의 결성을 요구했다. 그리고 성공했다. 그러나 이제는 오히려 전교조가 너무 정치적이고, 비민주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전교조가 신뢰를 회복하는 방법은 하나다. 교육의 궁극적 수혜자인 학생 중심으로 모든 운동을 재편하는 일이다. 밖으로 향한 운동을 하지 말고, 학교 안의 학생으로 다시 눈길을 돌려야 한다. 전교조는 2002년 5월 ‘참교육 실천 강령’을 만들었다. 제1조가 ‘우리는 더불어 사는 삶을 소중히 여기는 인간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새해, 전교조부터 독주를 멈추고 ‘더불어 사는 삶’의 소중함을 되새겼으면 싶다.

심규선 편집국 부국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