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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큰바람 불고 구름 일더니卷七. 烏江의 슬픈 노래

입력 | 2006-01-02 03:00:00

그림 박순철


“조참과 관영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지금 두 길로 서초의 가슴이나 배 같은 땅을 가로질러 오고 있는데 그 기세가 볼 만한 모양입니다. 조참은 제북에서 하수(河水)를 따라 내려오며 서초(西楚)의 서북 변두리를 휩쓸고 있고, 관영은 설군(薛郡) 쪽으로 내려가 서초 동남의 여러 성을 떨어뜨린 뒤, 이제는 회수(淮水)를 건너려 하고 있다고 합니다. 관영에게 사자를 보내 팽성을 들이치게 하시면 항왕은 이곳 광무산에서 더 버티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장량의 말은 옳았다. 장량이 동광무에서 한왕 유방에게 조참과 관영의 움직임을 그와 같이 들려주고 있을 무렵 서광무의 패왕 항우는 팽성의 항타가 보낸 유성마를 통해 한층 자세한 그곳의 전황을 듣고 있었다.

“제왕 한신이 한나라 장수 조참과 관영을 풀어놓아 산동(山東)이 어지럽기 짝이 없습니다. 조참은 제북에서 내려와 창읍(昌邑)과 안양(安陽)을 휩쓴 뒤, 정도(定陶)를 노리고 있는데 그 기세가 여간 날카롭지 않습니다. 대군을 원병으로 보내지 않으면 정도는 곧 서초의 땅이 아니게 됩니다.

한나라 기장(騎將) 관영은 한왕을 구하러 광무산으로 가지 않고 설군으로 밀고 들어 그 군장(郡長)을 쳐부수고 기장 한 명을 사로잡아 갔습니다. 이어 관영은 사수군을 가로지르며 부양(傅陽) 하상(下相) 서(徐) 취로(取盧)를 휩쓴 뒤에 회수를 건너 광릉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신은 항성(項聲)과 설공(薛公) 담공(담公)에게 군사를 주고 회수 북쪽으로 보내 관영을 막게 하였으나, 그 군세가 만만치 않다고 합니다. 하비(下비) 남쪽에서 관영을 막지 못하면 다시 팽성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말을 듣자 계포가 군사들을 이끌고 군량을 날라 와 치솟았던 패왕의 기세는 일시에 가라앉았다. 곁에서 장졸들이 듣고 있는 것도 잊고 큰 소리로 탄식했다.

“쥐새끼 같은 것들이 사방에서 날뛰는구나. 과인의 사나운 장수들과 날랜 병사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어찌 이리도 과인을 외롭게 하는가!”

그러면서도 광무산의 진채를 거두고 근거지인 서초로 돌아갈 생각은 않았다. 그 바람에 광무간을 사이에 둔 초(楚) 한(漢) 양군의 억지스러운 교착 상태는 다시 이어졌다. 폭발적인 전투능력은 탁월하나 긴 전쟁을 경영할 능력이 없는 패왕 때문에 이전과 마찬가지로 날이 갈수록 초군만 사그라지고 말라가는 묘한 소강상태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팽성에서 온 증원군은 틀림없이 초나라 장졸들의 사기를 올려주었으나 오래가지는 못했다. 나날이 부풀어 오르는 한군의 군세가 실감되면서 자라난 두려움과 불안이 그 효과를 지워버린 탓이었다. 3000곡(斛)의 군량도 이미 오랫동안 굶주려 온 10만 가까운 대군에는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처음 쌓아 두었을 때는 산더미 같던 쌀가마는 열흘이 안돼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거기다가 다시 팽성에서 날아든 소식이 광무산에 있는 초군의 사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사이 회수를 건넌 관영은 초나라의 여러 성을 차례로 떨어뜨리며 오중(吳中)으로 내려갔다. 광무산에 묶여 있는 한왕 유방에게는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았으나, 초나라의 심장부를 휩쓸고 다님으로써 멀리 나가 있는 패왕을 혼란시키고 불안하게 만들 수는 있었다. 그런데 광릉(廣陵)에 이르렀을 무렵 탐마가 반갑지 않은 소식을 전해 왔다.

글 이문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