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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오디세이]산전수전 다 겪은 ‘58년 개띠’

입력 | 2006-01-02 03:00:00


한국사회에서 ‘58년 개띠’만큼 인구에 회자되는 띠도 없을 것이다. 수많은 띠 중에서 개띠 그것도 58년 개띠가 이토록 오래 회자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58년 개띠가 6·25전쟁이 끝난 뒤 시작된 베이비붐 세대의 절정에 선 출생세대로 수가 많은 만큼 치열한 경쟁을 거쳐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 통설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과연 그럴까.

기자는 통계청 인구센서스 자료부터 뒤져 봤다. 우리나라 인구센서스에서 출생아 수가 조사된 것은 70년생 이후부터다. 할 수 없이 1925년부터 대략 5년 단위로 실시해 온 인구센서스 자료에서 58년생에 해당하는 인구를 추적해 봤다.

60년 인구센서스에서는 55∼57년생이 70만 명대, 59∼60년생이 80만 명대인 데 비해 58년생은 100만 명을 넘어서 그 숫자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통설이 확인되는 듯했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같은 개띠해인 70년 인구센서스를 찾아봤다. 58년생이 87만여 명으로 줄어들고 60년생이 100만여 명으로 역전돼 있었다. 2000년 인구센서스를 찾아봤다. 58년생은 81만여 명으로 70만 명대인 55∼57년생보다 많지만 59년생과 60년생에 비해서는 적다. 이러한 경향은 1960년을 제외한 인구센서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인구학자들의 의견도 같았다. 인구변천사를 연구한 충남대 전광희(사회학) 교수는 70년 이전 출생아 수를 5년 단위로 추정했을 때 베이비붐 세대의 정점은 55∼60년이 아니라 60∼65년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베이비붐 세대의 인구학적 특성’이라는 석사논문을 발표한 한국교원대 대학원 과정의 김영민 씨는 더 나아가 “한국사회에서 가장 치열한 경쟁을 겪은 세대는 58년 개띠가 아니라 70년 개띠”라고 말했다. 70년 개띠가 출생아 수도 월등히 많을 뿐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사회에 진출할 나이인 만 27세에 외환위기를 만났다는 점에서다.

어쩌면 58년 개띠를 그처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사회문화적 각인 효과가 아닐까. 사회제도적 측면에서 이들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 모두 본고사가 면제된 첫 ‘뺑뺑이 세대’의 이미지가 강하다. 여기에 ‘개’에 대해 친근함을 느끼는 집단정서가 맞물리면서 58년 개띠에 대한 세대적 후광 효과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58년 개띠는 그 이전 세대에게는 활달하고 잘 뭉쳐 다니는 평준화 세대로서 인상이 강하다. 58년생인 주선희(얼굴경영학) 원광디지털대 교수는 “역술적으로 개 술(戌)자가 들어간 갑술, 병술, 무술, 경술, 임술 다섯 해 중에서 58년에 해당하는 무술생이 가장 잘 놀고먹는 운세를 타고났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그 이후 세대에게 ‘58년 개띠’는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 든 세대’의 대명사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 씨가 58년생이라는 점이 상징하듯 이들은 생물학적 나이로나 상징적인 의미에서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통치기를 거치며 10월 유신, 10·26, 12·12, 5·18을 겪었다. 좋건 싫건 그들은 박정희 세대다. 그들이 사회에 진출하자마자 그 후배들인 386세대에 의해 ‘역사’로 인식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외환위기 이후 ‘58년 개띠’는 사오정 세대의 대표로 다시금 역사의 호명을 받고 있다. 역사는 왜 자꾸 그들을 호명하는 것일까. 어쩌면 낙천적 개의 이미지에 기대어 힘겨운 시대를 이겨내려는 해학적 상상력의 소산이 아닐까.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