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조상은 아프리카의 숲 속에서 살았다. 수백만 년 전 어떤 이유에서인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해 진화를 거쳐 ‘만물의 영장’에 오른다. 인류와 같은 조상을 두었으나 아프리카에 그대로 남았던 게 침팬지다.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염기배열은 98.7% 일치한다. 이런 유사성 때문에 침팬지는 종종 인간을 대신해 생체실험의 대상이 된다. 100년 전만 해도 200만 마리에 달했던 침팬지가 현재 15만 마리로 감소했다.
▷‘호모파베르’는 ‘도구 인간’이라는 말이다.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도구를 다룰 줄 안다는 자랑이다. 그러나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은 침팬지도 도구를 사용할 줄 알며 유머감각까지 갖고 있음을 밝혀냈다. 침팬지는 나뭇가지의 잎을 떼어낸 뒤 흰개미를 낚시한다. 상대를 간질이며 놀기도 하고 등을 두드리며 위로할 줄도 안다.
▷인간과 가까운 또 다른 원숭이가 ‘보노보’이다. 보노보 역시 침팬지처럼 언젠가 인류의 조상과 결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침팬지는 수컷 하나가 여러 암컷을 거느리는 가부장(家夫長) 사회인 반면 보노보는 가모장(家母長) 사회다. 상반된 두 특징이 인간사회에도 있었으니 흥미롭다. 인간 본성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의학적 과학적 측면에서도 침팬지는 소중하다. 인간과 침팬지 염색체의 차이점을 완벽히 규명하면 생명공학 연구에 큰 진전이 이뤄질 것이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박홍석 박사팀이 일본과 공동 연구를 통해 침팬지의 Y염색체를 55% 해독하는 데 성공했다. 침팬지가 에이즈와 치매에 걸리지 않는 것은 침팬지에게 면역질환 관련 유전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인류를 괴롭혀 온 양대 질병의 퇴치를 위해 유용한 연구결과가 아닐 수 없다. ‘황우석 쇼크’ 속에서도 생명공학계의 저력을 입증한 반가운 소식이다. 지난해 말 일본 정부는 향후 5년간 과학기술 분야에 무려 25조 엔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다른 국가예산은 삭감하면서도 과학기술 투자는 늘린 것이다. 침울한 우리 과학계의 심기일전(心機一轉)을 위해서도 정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