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든 싸워 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싸움에는 끝이 없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사진) 일본 총리가 신년 연휴 중인 2일 도쿄(東京) 시내의 가부키(歌舞伎) 전용극장에서 ‘노부나가(信長)’를 감상한 뒤 ‘싸움은 인간의 숙명’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그는 기자들이 “노부나가의 인생을 보고 앞으로의 정국 운영에 뭔가 좋은 힌트를 받았느냐”고 묻자 특유의 가라앉은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주인공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는 일본 전국시대를 평정하기 직전 심복의 음모에 휘말려 통일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불에 타 숨진 비운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에 관한 역사소설을 즐겨 읽는 고이즈미 총리는 평소 존경하는 인물로 주저 없이 그를 꼽아 왔다.
정치평론가들은 고이즈미 총리가 지난해 8월 집권 자민당 내 일부 의원의 반대로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되자 예상을 뒤엎고 의회 해산과 총선거 실시를 단행해 반대파 축출에 성공한 것도 전광석화와 같은 ‘노부나가식 전법’을 본뜬 것이라고 설명한다.
관객들은 노부나가로 등장한 배우가 가문 내부의 반대파를 겨냥해 “오다 가문을 부수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환호와 함께 큰 박수를 보냈다. 고이즈미 총리가 2001년 4월 총재 경선에서 낡은 체질의 자민당을 빗대 “집권하면 자민당을 파괴하겠다”고 공약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의 이 같은 소감에 대해 내정 개혁 완성을 위해 저항세력과의 투쟁을 계속해 나갈 것을 다짐한 것으로 풀이했다. 올해 9월로 예정된 자신의 임기 만료에 맞춰 벌어질 차기 총리 경선이 ‘또 하나의 큰 싸움’이 될 것이라는 시각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편 제1야당인 민주당의 차기 대표 출마를 고려 중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전 부대표는 고이즈미 총리를 ‘싸움꾼’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의 정치수법은 닥치는 대로 해치우는 방식”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상대가 우물쭈물하는 사이 치명적인 일격을 가하는 솜씨는 알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