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잔치의 계절’이다.
2일 1차 개각과 다음 달 18일 열린우리당 전당대회, 이후에 이루어질 2차 개각과 5월 지방선거 등 잔칫상이 푸짐하다. 못 찾아 먹으면 바보다. 여당 재선 이상으로 한자리 차지하지 못하면 ‘팔불출’ 소리를 듣는다.
게임의 법칙은 없다. ‘돌려 막기’ ‘경력 세탁’ 등 신종 수법이 난무한다. 여당 대표 격인 정세균 당의장이 ‘일개’ 장관으로 가고, 의원과 보좌관 사이였던 이해찬 국무총리와 유시민 의원은 내각에서 총리와 장관으로 만날 공산이 크다.
3년여 전만 해도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통일부의 용역을 받아 일했던 이종석(48)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은 통일부 장관 겸 NSC 상임위원장에 내정됐다. ‘58년 개띠’인 이 내정자는 명실상부한 통일 외교 안보 정책의 수장으로 열네 살 많은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16세 연상의 윤광웅 국방부 장관을 사실상 지휘하게 됐다.
열린우리당 재선인 김영춘 임종석 의원은 2월 전당대회에서의 당권 도전을 공언하고 있다. 행정자치부 장관 기용설이 나도는 이강철 전 대통령시민사회수석비서관도 이번 잔치에서 어떤 식으로든 손에 떡을 쥘 것 같다.
잔칫상에 먹을 게 별로 없는 야당에서는 젓가락이 지방선거로 몰리고 있다. 한나라당 맹형규 홍준표 이재오 박진 박계동 의원 등 5명과 권문용 강남구청장은 서울시장, 이규택 김문수 남경필 김영선 전재희 의원 등 5명은 경기도지사 접시에 입맛을 다시고 있다. 이들 중 행정 경험이 있는 사람은 권 구청장과 전 의원 정도다.
경험이나 경력과 별 상관없는 ‘그들만의 인사 잔치’는 필연적으로 자리의 값을 떨어뜨린다. ‘자리 디플레’ 현상이 벌어지면 ‘쟤는 되는데 나는 왜 안 되느냐’, ‘무조건 젓가락부터 올려놓고 보자’는 질투와 뇌동(雷同)이 난무한다.
이런 ‘자리 디플레’는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30대 측근이던 안희정 씨가 “집권당 사무총장이 될 것”이라고 공언할 때부터 예고됐다. 어쩌면 노 대통령의 당선 자체가 전조(前兆)였는지 모른다. 이후 ‘인물’보다는 ‘코드’, 국정 효율보다는 정치게임을 우선시하는 노 대통령의 인사가 자리의 격을 떨어뜨리고 있다.
무엇보다 노 대통령은 ‘자리는 게임 판의 말’이라는 식의 발언을 대놓고 한다. “국정에 큰 지장 없이 할 테니까 그거(낙선자 배려) 하나는 좀 봐 달라”고 말했고, “당내 지분이 있는 유시민 의원이 입각 기회를 가져야 한다”(김완기 대통령인사수석비서관)고 했다. 도대체 ‘당내 지분=입각’이라는 등식은 어떤 산법(算法)에서 나온 걸까.
정부 인사가 이러면 어렵사리 서울에 유학해 행정고시에 붙은 뒤 20년 만에 국장급이 된 시골 수재 출신의 A 씨, 명문대를 나와 20년 직장생활에 중견기업 부장을 하고 있는 B 씨의 입에서 절로 “×나 ×나 다 해 먹는다”는 말이 나온다. 냉소주의와 마음속의 경멸이 꿈틀거리는 곳에서 국정의 성과를 내기는커녕 정부 운영마저도 쉽지 않다.
노 대통령이 이 모든 걸 버리고라도 얻고자 하는 정치게임의 종착점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여당의 재집권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에서든, 여당에서든 자리의 질이 떨어지면 국정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정부와 여당에 미래가 있을 수 없다.
박제균 정치부 차장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