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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맞는 것도 지겹다” 영화 ‘싸움의 기술’

입력 | 2006-01-05 03:05:00

사진 제공 래핑보아


“또 (나를) 건들면 그땐 (너) 피똥 싼다”고 배우 백윤식이 특유의 무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린다면, 그건 십중팔구 유머다. 그런데 백윤식이 진짜로 ‘피똥 싸게’ 만든다면 어떻게 될까. 농담이라고 여긴 일이 고스란히 실현되는 데서 오는 끔찍함과 당혹스러움. 적당히 웃기고 치고받는 코믹 액션물을 기대했다면 뒤통수 맞는다.

‘약골’ 고교생 병태(재희)가 우연히 왕년에 날리던 싸움의 고수 오판수(백윤식)를 만나면서 그 역시 고수가 된다는 내용의 ‘싸움의 기술’(5일 개봉). 단순한 영화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천만에. 이 영화, 장난이 아니다.

이런 장면이 있다. 오판수는 기술을 전수해 달라 떼 쓰는 병태를 ‘시험’에 들게 한다. 이 지점에서 포복절도할 에피소드가 기대되지만, 그렇지 않다. 오판수는 시퍼런 칼을 내밀며 “이걸로 너 자신을 찌를 수 있으면 싸움을 가르쳐 줄 수 있다”고 한다. 병태는 자기 손목을 쓱 벤다. 피가 사방으로 튄다.

두 번의 심의 끝에 일부를 잘라내고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를 가득 채우는 욕설과 폭력은 본격적인 하드보일드 조폭 영화 쪽에 가깝다. ‘학원’이라는 낭만 짙은 무대와 백윤식이 틈틈이 던지는 넉살 좋은 유머는 오히려 곧바로 이어질 폭력의 체감지수를 극한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일종의 페인트 모션이다.

영화에는 ‘500원짜리 동전으로 상대 얼굴 작살내기’와 같은 각종 ‘싸움의 기술’이 ‘원 포인트 레슨’처럼 전개된다. “나는 그를 닮고 싶었다”는 병태의 내레이션에는 치기어린 나이에 한 번쯤 동경했을 법한 쓸쓸한 영웅담의 냄새까지 풍긴다.

하지만 연기도 좋고 대사도 좋고 연출도 그만하면 좋은 이 영화가, ‘나쁜’ 영화라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 상상하는 모든 걸 눈으로 일일이 보는 것이 반드시 행복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신한솔 감독의 장편 데뷔작.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