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연초부터 다시 세 자릿수로 진입했다.
외환당국의 구두 개입에 이은 시장 개입도 환율 하락을 막지 못했다.
외환시장 관계자는 “달러화 약세가 대세인 만큼 당국도 1000원 선을 지키는 것보다는 환율 하락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주력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환당국의 힘만으로는 달러화의 글로벌 약세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제 ‘세 자릿수 환율 시대’가 본격적으로 왔다고 보고 있다. 이는 수출기업의 채산성 악화, 나아가 경제성장률 하락을 부르고 개인의 재테크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환율 하락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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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3일(현지 시간) 공개된 지난해 12월 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의 ‘인플레이션 억제에 필요한 금리 인상 횟수는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라는 대목이 조기 금리 인상 중단 의지를 밝힌 것으로 해석돼 ‘예상’이 ‘확신’으로 변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이르면 3월에는 금리를 동결할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중단되면 달러화로 표시된 자산에 대한 수요가 줄면서 달러화는 약세를 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그동안 금리 인상에 가려졌던 미국의 쌍둥이 적자(경상 및 재정적자)가 부각되면 달러화 약세 속도는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중국이 조만간 위안화의 변동 폭을 확대해 추가 절상을 용인할 것이라는 점, 올해도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해 서울 외환시장에 달러화 공급 초과 현상이 계속될 것이라는 점 등도 환율 하락 요인으로 꼽힌다.
삼성경제연구소 정영식(鄭永植) 연구위원은 “연평균 환율을 당초 1014원으로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하락 시기가 빨라 전망치를 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울 외환시장 참가자들의 심리가 환율 하락 한쪽으로만 쏠리지 않는다면 원-달러 환율이 다시 1000원 선을 회복할 것이라는 예상도 만만치 않다.
KB선물 오정석(吳政錫) 투자전략팀장은 “환율 하락 요인들이 대부분 상반기에 반영되면 하반기에는 반등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세 자릿수 환율의 영향
올해 환율 하락은 이미 예상됐던 것이지만 세 자릿수 진입 시점은 예상보다 빠르다는 게 중론이다.
정부는 바짝 긴장하는 분위기다. 환율 하락이 올해 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 환율이 하락하면 수출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출기업의 채산성이 악화돼 결국 수출이 위축된다.
KOTRA가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적정 환율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대부분 환율이 1000원 밑으로 내려가면 채산성이 크게 나빠질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부품, 타이어 업계는 ‘환율 마지노선’을 950원이라고 답했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자동차 등 주요 수출기업은 올해 환율 하락을 예상해 기준 환율을 1000원 안팎으로 낮춰 잡고 대응책을 마련했지만 환율이 연초부터 급락세를 보이자 수익성 악화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환율 변동에 대한 대책이 거의 없어 피해가 클 것으로 우려된다.
그러나 SK, 대한항공 등 외화 부채가 많은 업체들은 환차익이 예상된다.
○ 개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환율 하락은 달러화 가치가 떨어진다는 뜻이므로 갖고 있는 달러화는 빨리 원화로 바꾸고 해외에 달러화를 송금할 때는 최대한 천천히 하는 것이 좋다.
해외 펀드에 가입할 때도 환율을 고려해야 한다. 미국 기업에 투자하는 펀드가 아니라도 해외 펀드는 대부분 달러로 주식을 사들이기 때문. 해외 펀드 가입 시 환율 변동에 따른 위험을 막을 수 있는 선물환 계약을 병행하는 게 좋다.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주가 영향은…“국내기업 체력 좋아져 충격 미미” 낙관론▼
코스피지수(옛 종합주가지수)가 ‘1,400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 12월 29일부터 거래일 기준으로 4일 연속 올랐다. 증시 신기록을 매일 갈아 치우는 파죽지세의 모습이다.
특히 이날 증시는 환율 하락이라는 ‘예고된 악재’에 개의치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환율 하락 속도가 더 빨라지면 주가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 환율이 주가 상승 걸림돌 될까
증권가에서는 환율이 하락해도 지난해 초처럼 국내 기업과 증시에 큰 영향을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굿모닝신한증권 김학균(金學均) 연구원은 “환율 세 자릿수 시대가 와도 한국 기업의 내성이 커져 지난해 같은 충격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원화가치가 높아지는 것은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펀더멘털)이 좋아졌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증시에 악재가 아니라는 평가도 있다.
대우증권 이영원(李瑩源) 투자전략팀장은 “기업 실적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환율 하락 우려를 압도하고 있다”며 “이달 중순까지는 증시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2개월 이상 증시에 조정다운 조정이 없었다는 점은 ‘악재’로 꼽힌다. 지난해 12월 22일 1,350 선이었던 코스피지수는 거래일 기준으로 열흘도 안돼 1,400 선을 뛰어넘었다.
이처럼 주가 상승 속도가 빠른 마당에 환율 하락이 급하게 계속된다면 이를 계기로 증시가 조정에 들어갈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우리투자증권 황창중(黃昌重) 투자전략팀장은 “환율이 지난해 최저치인 997.1원 아래로 떨어진다면 기업 실적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조정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다른 증시 여건은 좋다
환율을 제외하면 증시 주변의 여건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특히 3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금리 인상 중단을 시사하면서 증시를 짓눌렀던 묵직한 ‘악재’ 하나가 완전히 사라졌다.
적립식펀드를 중심으로 시중자금은 계속 증시로 유입되고 있다. 자산운용협회에 따르면 2일 하루에만 주식형펀드 수탁액이 2조 원가량 늘었다.
곧 발표될 상장기업들의 지난해 4분기(10∼12월) 실적에 대한 기대도 크다. 삼성전자는 좋은 실적에 대한 시장의 기대로 4일 한때 70만 원 선까지 오르기도 했다.
교보증권 정용택(鄭龍澤) 투자전략팀장은 “미국의 금리 불확실성이 해소됐고 곧 발표될 기업 실적도 투자자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낮아 주가 강세는 이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