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구 이문동 ‘큰만신’ 김금화 씨(작은 사진)의 무각을 찾은 이경자 씨. “소설가는 사람을 들여다봐야 한다. 나도 반쯤은 무당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작가이며 가톨릭 신자인 중진 작가 이경자(57) 씨가 무속 세계를 소재로 한 장편 ‘계화(桂花)’를 생각의나무 출판사에서 펴냈다.
가족과의 불화 끝에 가출한 뒤 술집을 전전하던 지연주라는 젊은 여성이 갑자기 찾아온 신내림의 징후를 보고 큰 무당 ‘계화’를 찾아가 신내림굿을 받게 되는 어느 하루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소설의 한 축을 이루는 ‘계화’는 중요무형문화재(82호) 예능보유자인 큰만신 김금화(76) 씨를 모델로 했다. 이 씨는 “내 개인사가 선생님의 따스한 위로에 기대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을 만큼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하루 한 번씩, 어떤 날엔 몇 번씩이고 전화 걸어 하소연하고 매달렸던 적이 있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그것은 열린 종교다. 김금화 선생님께는 감사한 마음이 가득할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 씨가 김 씨를 처음 만난 것은 서울대 미대 출신의 전도유망한 후배가 1980년대 초에 김 씨에게서 신내림굿을 받고 무당의 길을 시작한 때였다.
“신내림굿을 보다가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온전한 인간으로 살아가던 후배가 이제 평범한 삶을 벗어던지고, 인간도 신도 아닌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을 거예요.”
소설에서 계화는 연주에게 이렇게 말한다. “부디 큰 만신이 되어라. 무당은 행복한 사람들을 볼 수가 없다. 불행해서 널 찾아왔다가도 행복해지면 침을 뱉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서러워 말고 원망도 하면 안 된다. 무당은 아픈 사람, 억울한 사람, 불행한 사람들을 위해 태어났단다.”
소설 ‘계화’에서 무당은 편견과 차별을 받으면서도 위로와 해원을 베푸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다. 이 씨는 “나쁜 기운을 막는 서낭신, 집을 지켜주는 성주신, 산을 보듬어주는 산신 같은 우리 신에 대해서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제우스와 아프로디테의 가계도를 꿰뚫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고 말했다. 그는 “‘계화’가 나온 뒤 가장 먼저 김금화 선생님께 갖다드렸는데, ‘넌 소설가 무당이야’라며 웃으시더라”고 말했다.
권기태 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