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행복해지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본보와 서울백병원이 개최한 직장인 집단 토론에서는 직장에서의 인간관계에 초점이 모아졌다. 홍보기획사 KPR 사무실에서 20대 사원부터 50대 본부장까지 각 연령층이 모여 화합 분위기를 연출했다. 안철민 기자
《“정신과의 사이코드라마처럼 부하 직원이 상사, 상사가 부하 직원의 역할을 맡아 상황극 같은 걸 해봤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스트레스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김모 씨·37)
“회사가 가족 복지를 지원했으면 좋겠어요. 많은 직장인이 행복의 기준을 가정에 두잖아요. 회사에서 준 먹을거리를 내 가족이 먹고 있으면 마음이 뿌듯해요.”(김모 씨·33)
“내가 사장이라면 임원들과 10번 미팅할 시간에 직원들과 20∼30번 만나 이야기하고 똑같은 처지에서 이야기를 들어줄 거예요.”(이모 씨·30·여)
“경험 많은 선배가 신입사원들에게 일대일로 일을 가르치는 멘터링(mentoring) 제도가 있으면 좋겠어요.”(송모 씨·29)
“사람 늘려서 야근 덜하게 해 주면 전 아무 불만 없어요.”(정모 씨·28)
지난해 12월 13∼23일 10개 기업을 돌며 진행한 직장인 심층 집단토론에서는 일터에서 행복해지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행복해지기 위한 아이디어는 대체로 직장에서의 인간관계 개선에 집중됐다.》
대기업에 다니는 정모(34) 씨는 얼마 전 상사에게서 ‘화장실 안 가고 해도 1시간 걸릴 일’을 10분 만에 해 오라는 지시를 받아 황당해했던 경험이 있다.
그는 “정보기술(IT) 환경에서 일하는 20, 30대 직장인의 노동 강도가 과거 경제개발 시대의 공장 근로자와 비슷해졌는데 40대 이상의 상사들은 그걸 잘 모르는 것 같다”며 “서로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외로 ‘아날로그적 의사소통’을 원하는 20대도 있었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모(25·여) 씨는 모든 업무를 e메일과 메신저로 처리해 사무실이 너무 조용한 것이 낯설기만 하다. 그는 “생활 소음이 너무 없어 불만”이라며 “서로 친해지도록 회식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직장에서 인간관계의 밀도 높이기도 다양한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하나은행 변화추진팀은 지난해 20대부터 50대까지 8명의 팀원이 한 달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집들이를 했다. 각자 집 근처의 맛있는 집을 골라 저녁 식사를 한 다음 집에서 차를 마시는 방식. 1인당 2만 원씩 걷어 밥값을 해결하고 남는 돈은 집들이를 하는 직원에게 ‘찻값’ 삼아 주므로 서로에게 부담이 없다.
김왕기(金王基·42) 부팀장은 “연속 집들이 이후 이야깃거리가 많아져 사무실 분위기가 부드러워졌고 칭찬을 많이 하게 되면서 칭찬과 인정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가정과 직장 안팎의 갈등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회사도 늘고 있다.
하나은행과 유한킴벌리, SK그룹은 직원들의 스트레스 자녀교육 가정생활 법률 건강 재정문제 등에 대한 전문적 상담을 제공하는 직장인 지원 프로그램(EAP·Employee Assistance Program)을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전 사업장에서 EAP를 운영하는 유한킴벌리는 외부 컨설턴트와 용역계약을 하고 직원뿐 아니라 직원 가족에게까지도 상담 서비스를 제공한다. 상담은 일대일 면접뿐 아니라 무료 핫라인 전화를 통한 24시간 전화 상담, 온라인 상담이 모두 가능하다. 이은욱(李殷煜) 전무는 “EAP는 탄력근무제, 평생학습 지원, 가족농장 운영 등 유한킴벌리가 시행 중인 가정친화경영 프로그램 중의 하나”라며 “직원들의 마음을 얻기에 힘쓴 결과 제품 결함률을 미국의 6분의 1 수준으로, 직원 이직률은 0.3%대로 낮출 수 있었다”고 소개했다.
직원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복지 혜택을 입맛에 맞게 고를 수 있도록 하는 선택적 복지제도를 도입하는 회사도 늘어나는 중이다.
포스코는 직급에 따른 한도액 안에서 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는 복지카드제를 운영하고 있다. 신용카드처럼 복지카드를 내고 자녀 및 본인의 학원 수강, 도서 구입, 건강검진, 탁아 및 의료, 스포츠 시설 이용 등의 서비스를 골라 받을 수 있다.
기업을 대상으로 복지제도를 지원하는 업체인 네티웰의 임현숙(林賢淑) 실장은 “지난해 하반기 선택적 복지제도 운영에 대한 기업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직원이 행복해야 회사의 발전도 가능하다는 점을 자각하는 기업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
▼쥐어짜는 회사? 채워주는 회사!▼
21세기는 지식산업의 시대다. 손보다 머리가 중요하다. 쥐어짜도 국물은 나오지만 그것만으론 모자란다. 더 많은 건더기가 필요하다. 건더기는 직원들 스스로 창의성을 발휘할 때 나온다. 창의성은 행복지수와 비례한다. 마음이 불행한데 열심히 변화를 실천할 사람은 없다. 행복한 직장인, 행복한 일터가 나라를 세운다.
처음 직장인 심층 집단토론을 시작할 땐 직장인의 행복은 물질적 만족이나 승진이 좌우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집단토론이 진행될수록 많은 사람이 ‘내면의 만족’을 꼽았다.
물론 월급이 너무 적으면 불행하다. 그러나 월급이 많다고 해서 그만큼 행복하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일의 보람과 의미, 원만한 인간관계가 중요한 행복의 조건이었다.
이제 우리의 행복 문화도 선진국형으로 진입했다. 선진국은 물질적 만족부터 추구했고 실제로 성공했지만 이젠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행복을 물질에서 찾는다면 행복의 공급량을 계속 늘리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정신적인 만족과 영적인 행복은 무한정 공급할 수 있다.
기업이 해야 할 역할이 크다. 우선 직원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한 ‘멘털 피트니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조직원들이 내면에 시간을 투자하고 활기차게 업무에 몰두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직장인 지원 프로그램(EAP)도 좋은 방법이다.
또 일본처럼 가족 친화 경영을 잘하는 기업에 인증마크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핵가족 시대의 직장인은 업무 이외에 자녀 양육과 교육, 노부모 모시기 등 괴로운 일이 많다. 그 짐을 회사가 덜어 주면 직원이 행복해하고 회사에 자부심을 느낀다. 이는 결국 기업에 이득이다.
개인이 노력할 점도 있다.
첫째, 진정한 친구를 챙겨야 한다. 모든 연구에서 공통적으로 보고하는 행복의 핵심 요소는 대인관계다. 친구, 가족과 친밀감을 강하게 느낄수록 인생이 행복해진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친구와 가족 챙기기를 등한시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 2막을 함께할 동반자는 연금저축보다 중요하다.
둘째, 지금 살고 있는 삶을 좋아해야 한다. ‘해야만 하는 일’로 삶을 채우기보다 ‘하고 싶은 일’을 우선시해야 한다. 내면의 만족을 위해서는 매사에 의미와 재미를 찾는 자세가 중요하다.
셋째, 당장 수첩을 꺼내 지난 일주일간 고마웠던 일을 적어 보자. 일주일에 한 번 감사의 일기를 적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행복하게 산다는 것이 또 다른 연구 결과다.
우종민 교수·인제대 서울백병원 신경정신과 eap@stresscenter.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