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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학]‘자아상실의 시대’ 그날이 오면…‘미래’

입력 | 2006-01-07 03:02:00


◇미래/수전 그린필드 지음·전대호 옮김/388쪽·1만5000원·지호

“인간이라는 종(種)으로서 우리의 미래는 기술 속으로 완전히 녹아들 것이다!”(프랜시스 후쿠야마)

내일의 과학은 우리의 삶과 정신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까? 21세기에 무엇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느냐가 아니라, 기술적으로 가능한 것이 우리의 가치관과 인간 정신의 내면생활을 어떻게 바꿔 놓을지 묻는 것이다.

새 시대의 과학기술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방식뿐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방식까지 송두리째 바꿔 놓지 않을까.

그 징후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어지럽고 복잡한 ‘지금 여기’를 버리고 다른 세계로 진입하도록 해 주는 휴대전화는 미래 생활양식의 전조다. 직접적인 실재를 버리고 대안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행태는 머지않아 사적인 공간으로까지 확산될 것이다.

저명한 신경과학자인 저자는 이 책에서 새 시대의 과학과 기술이 우리의 실존에 가할 충격을 생생하게 그려 보인다.

우리는 지금 고도로 인격화된 정보기술과, 보이지 않게 침입하는 나노기술, 그리고 ‘탈(脫)인간화’를 부추기는 생명공학이 지배할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며, 이 기술들은 우리의 사고 자체를 위협할 수 있다고 저자는 경고한다.

“미래의 과학기술은 우리가 어떤 종류의 개인으로 남아 있을지, 심지어 우리가 도대체 개인으로 머물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현기증이 일 정도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완화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을 ‘소독’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 없이도 쾌락을 느낄 수 있을까?

21세기 후반기에 이르러 당신은 현실을, 더 중요하게는 당신 자신을 어떻게 보게 될까?

당신은 더는 현실이 지속적이고 독립적이며 ‘저 밖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주위의 세계는 당신의 생각에 따라 변할 것이다. 이제 당신은 ‘의지’만으로도 물체를 움직일 수 있다. 당신의 세계는 고도로 쌍방향적이며 그런 만큼 고도로 불안정하다.

당신 몸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다. 물리적인 ‘당신’이 끝나는 지점은 정확히 어디일까. 아마도 당신은 감각을 강화하고 근육의 힘을 향상시키기 위해 이식받은 인공기관을 서너 개 지니고 있을 터이다.

“당신과 외부세계 사이에, 당신과 당신의 소망 사이에 경계가 희미해지면서 당신은 당신 자신에게조차 모호한 현상이 될 것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당신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은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이 윤곽이 확실한 생각도 육체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아마도 당신은 전혀 개인이 아닐지도 모른다.

존재하는 것은 오직 경험뿐이다!

당신은 이제 스크린 앞에 있다. 당신에겐 어떤 불편함도 없다. 모든 욕구는 충족되었다. 당신은 상상(想像)을, 이제껏 당신이 한 그 어떤 경험 못지않게 실제적으로 보이는 사이버 현실로 만들 수 있다. 당신의 생각과 그 경험들은 거의 구별할 수 없다.

새 기술들은 어쩌면 선사 시대를 부활시킬지도 모른다. 우리가 문화와 관련된 가치 체계를, 개인으로서 의미를 얻기 위한 수단들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단순히 순간을 위해 동물로서 살았던 시대 말이다. 그 세계에는 자아감이 없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과 관련해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개념은 자아(에고)가 아닌가. 바로 그 소중한 자아가 새롭고 강력한 과학기술에 의해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다.

이제 대안적인 출구를 모색해야 할 때다.

개인적인 에고는 저절로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것은 적절한 환경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으며, 우리는 그 환경을 위해 설계하고 계획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해 합의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훨씬 덜 위험하게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에 우리는 무엇을 포기할 수 있고 또한 포기해야 하는지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는 그것을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의 ‘개인’일지도 모른다.

원제 ‘Tomorrow's People’(2003년).

이기우 문화전문기자 keyw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