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류시화 지음/237쪽·9900원·열림원
입시를 앞둔 학생들에게 구술이나 논술은 산 넘어 산이다. 당장은 내신과 수능에 매달릴 수밖에 없지만 눈앞의 불을 끄고 나면 곧바로 들이닥칠 일이 구술과 논술이다. 더욱이 무엇을 준비하고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감을 잡기도 어렵고 막연하기 짝이 없다.
문제가 잘 풀리지 않을 때는 그 문제를 덮어 두는 것도 한 방법이다. 지식의 늪에서 헤매느니 저자를 따라 아예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 보자는 말이다.
가진 거라곤 홑바지밖에 없으면서도 언제나 밝고 익살맞은 목소리로 “노 프로블럼, 서!”를 외치는 인력거꾼 차루. 많은 걸 갖고 있으면서도 집착과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에게 그는 잊지 못할 스승이 된다.
낯선 여행자를 염려해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내놓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은 그들이 먹을 것조차 변변치 않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가진 것이 없지만, 결코 가난하지 않은 삶의 방식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자세를 가르친다. 그들의 행위는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배가 부른 것 이상으로 마음을 부르게 하며 사막처럼 메마른 우리 인생을 촉촉이 적셔 주기도 한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것은 돌아오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어디론가 떠난다는 그 자체가 외부에 있는 무엇에 대한 지향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갈망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공간과 다르면 다른 곳일수록, 또 우리의 생각이나 행동과 차이가 나면 나는 곳일수록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더욱더 분명하게 느낄지 모른다.
낯선 세계와 낯선 사람들을 통해 이 책은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날그날의 일상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우리가 지나온 길과 가려는 길을 멀찍이 조망해 보라고 충고한다. 인도인들의 생활 속을 비집고 다니지만 지은이가 찾는 것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몸담고 있는 문명의 참모습인 셈이다.
삶의 자세가 분명치 않을 때 우리의 삶은 흔들린다.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삶을 살기 원하는지, ‘나’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때 지식도 비로소 균형과 체계를 갖춘다.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이고 가치와 논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문재용 서울 오산고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