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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문 직업학교를 가다]獨예나 응용과학학교…

입력 | 2006-01-07 03:02:00

독일 예나 응용과학학교의 레이저광학과 학생이 레이저 기기를 이용해 기계 부품을 만들고 있다. 다양한 맞춤형 기계를 제작할 수 있도록 정밀 레이저 계측 교육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이 학교의 졸업생들에게는 독일 기업들의 취업 ‘러브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나=유윤종 기자


《기차는 프랑크푸르트에서 두 시간 반을 달린 끝에 예나에 도착했다. 부드럽게 굽이치는 언덕이 시가지를 둘러싸듯 내려다보고 있는 아늑한 도시. 그 서남쪽 언덕 기슭에 예나 응용과학학교(Fachhochschule Jena·FH예나) 캠퍼스가 자리 잡고 있다.

“광학 분야의 첨단 교육을 알기 위해 저희 학교를 찾았다면 딱 맞히신 겁니다. 저희 학교의 광학 분야는 유럽을 넘어 세계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니까요.” 이 학교 과학기술학부(SciTec)의 안드레아스 슐라이허 학장이 자신에 넘친 표정으로 기자를 맞았다.》

▽기업들 지원 힘입어 특화 육성=FH예나는 독일 통일 직후인 1991년 구 동독 튀링겐 주 예나에 설립된 대학 과정의 기술 전문인력 양성 학교. 경영학부 전자기술학부 기계제조학부 기초과학부 등 8개 학부에 4600여 명의 학생이 다니고 있다.

이 중에서도 ‘빛’에 직접 관련되는 학과는 과학기술학부에 속한 7개 학과 중 검안학과(Optometry) 레이저광학과(Laser & Optotechnology) 등 두 개 학과다.

학생 수로는 전체의 5%인 230명에 불과하지만, 이 학교가 설립된 직후부터 지역 내 기업들의 환영을 받으며 육성되고 있는 ‘특화 분야’로 꼽힌다.

먼저 레이저광학과의 ‘스타’인 옌스 블리트너 교수의 연구실로 안내됐다. 레이저를 이용한 계측과 성형(成形)을 이용해 다양한 소재의 정밀부품 제작이 가능하다.

다양한 ‘맞춤형’ 기계를 오차 없이 제작할 수 있게 해 주어 독일 곳곳의 기업에서 ‘러브 콜’을 받고 있다.

이어 미하엘 게브하르트 검안학과 학과장이 기자를 검안학과 실험동(棟)으로 안내했다.

검안학이란 안경 등 시력 보조 장치가 필요한 사람의 눈 특징을 파악해 가장 적절한 보조 장치를 마련해 주기 위한 학문. ‘안경학’과도 통하지만, 장비의 제조와 맞춤 외에 생체조직인 ‘눈’의 특성을 파악하는 생리학적 연구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분야다.

콘택트렌즈 실험실, 안구생리학 연구실, 굴절광학 연구실 등 특화된 연구실에서는 학생들이 제각기 고객과 검안기사 역할을 맡아 측정 실험에 한창이었다.

▽안경원 개업에서 첨단기기 설계까지=“매 시간 연구실에 들어오기 전에 어떤 목적과 과정으로 실험을 진행할 것인지 철저한 계획을 세워 두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가혹한 질책을 받기 십상이죠.”

유학생 서재명(27·디플롬 과정 3학기) 씨는 “국내 대학 안경학과 과정과 비교하면 1학년 때 화학, 생화학, 수학 등 관련 기초과학 실력을 탄탄히 다져 놓은 뒤에 실무 실습에 들어가는 점이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빡빡한 수업 과정에도 불구하고 이 학교 검안학과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은 100%에 가까운 취업률 때문.

카를 차이스 예나, 예놉티크, 쇼트 등의 지역 내 광학회사뿐 아니라 광학기술을 필요로 하는 독일 산업계가 졸업생을 ‘모셔 가다시피’ 스카우트해 가고 있다.

서 씨는 “졸업생 중 자동차 헤드라이트 설계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도 상당수인 점을 생각하면 진로가 다양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웃음 지었다. 안경원을 개원하는 졸업생도 상당히 많다.

▽학비 부담 적지만 독일어 ‘필수’=최근 독일 대학들은 학제의 전환을 맞고 있다. 유럽 내 학제를 통일하기 위한 각국 교육장관들의 ‘볼로냐 선언’에 따라 학사(Bachelor)제를 도입하고 있는 것. 최근까지 독일 대학들은 졸업생에게 석사(Magister) 학위를, 직업학교는 디플롬 학위만을 수여해 왔다.

이에 따라 3년∼3년 반 수업 후 ‘디플롬’ 학위를 받는 2004년 이전 입학생과 달리 2005년 입학생부터는 4년 과정을 이수한 뒤 ‘학사’ 학위를 받게 된다.

독일의 대부분 지역처럼 FH예나 등 튀링겐 주 지역의 대학도 학기당 100유로(약 12만 원) 정도의 기본적인 등록금만 내고 있다.

서 씨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혼자 유학생활을 할 경우 월 500유로(약 60만 원) 정도면 큰 무리가 없다”고 말했다.

독일은 주마다 대학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 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하며 튀링겐 주의 경우 2008년까지 등록금 인상은 없고 그 이후 학기당 550유로(약 66만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 학생이 검안학과에 입학하려면? 독일의 수능시험에 해당하는 아비투어(Abitur)를 치러 합격해야 하며 이 밖에 독일어 시험(DSH 또는 TestDaF) 합격증도 필요하다.

특히 국내외 안경점 등 광학 관련 분야에서 3년 이상의 실무 경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게브하르트 학과장은 “FH예나의 검안학과에서는 광학기기에 사용되는 광학 지식 외에 눈과 관련된 생화학적 지식을 광범위하고도 깊이 있게 연구하므로 광학기계 분야나 개인별 눈의 특성을 폭넓게 고려하는 안경점 개업 등 다양한 분야의 진로를 설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나=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동독은 망해도 예나는 살았다▼

“최고급입니다. 카를 차이스 렌즈니까요.”

국내 안경점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는 ‘품질 보증 선언’이다. 세계적 전자회사에서 개발된 최신 디지털 기기에도 ‘카를 차이스 렌즈 사용’이란 문구가 붙어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세계 정상의 광학기기 회사 카를 차이스의 역사가 옛 동독 튀링겐 주에 속한 ‘광학의 수도’ 예나 시의 역사와 함께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카를 차이스사의 역사는 인근 바이마르 출신의 광학기술자 카를 차이스가 1847년 예나에 현미경용 렌즈 공방을 설립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전으로 막을 내리면서 이 세계 정상의 광학기기 회사도 분단 시대를 맞게 됐다. 폭격으로 무너진 소련군 점령지역 예나의 카를 차이스사가 복구를 서두르는 동안 서독지역으로 피란한 종업원들은 루르공업지대의 오버코헨에 새로운 ‘카를 차이스’를 설립했다. 두 회사는 냉전기간에 각각 공산권과 서방을 대표하는 광학회사로 튼튼히 자리 잡았다.

1990년 동서독이 통일되자 두 회사의 통합 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사의 대표들이 만나 상표권 문제 등을 논의했지만 결론을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옛 동유럽권의 경제난으로 기존 고객의 대부분을 잃은 예나의 ‘동쪽’ 카를 차이스를 1996년 서쪽 회사가 인수하면서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됐다.

비록 독일 통일과정처럼 동쪽이 서쪽에 흡수 합병되는 모양새를 띠었지만 고유의 기술을 꾸준히 축적해 왔던 예나의 카를 차이스는 오늘날 ‘카를 차이스 예나 주식회사’라는 별도법인으로 현미경을 비롯한 특수 정밀광학기기 제조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와 함께 1884년 창립된 광학유리 전문회사 ‘쇼트’, 예나의 풍부한 광학인력을 바탕으로 1991년 창립된 신생 광학기기회사 ‘예놉티크’도 광학도시 예나의 명성을 굳건히 하고 있다.

2005년 10월 독일통일 10주년을 맞아 경제전문지 ‘한델스블라트’ ‘비즈니스위크’ 등은 일제히 예나 시에 대한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옛 동독의 공업지역 대부분이 경쟁력을 상실하고 높은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지만 예나만은 광학기술의 첨단 경쟁력과 대학사회가 탄탄히 결합해 고소득과 높은 성장률로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화된 전문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던 이 도시는 통일의 파고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