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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에서 캐낸 아이디어…희망을 일구다

입력 | 2006-01-09 03:02:00


《농업 분야에서 경쟁이 거의 없는 ‘블루오션’을 개척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다. 새싹채소를 재배해 유통시키는 ‘건강나라’와 도라지로 분말, 환, 캔디 등을 생산해 파는 ‘장생도라지’는 단순히 농산물 생산에 그치지 않고 가공, 유통, 마케팅까지 결합해 농산물 기업으로 성장했다. 장인정신과 아이디어로 뭉치면 농업으로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들이다.》

■ ‘장생도라지’ 이성호-영춘씨 父子

어린 시절 이영춘(李榮春·49) 씨는 아버지와 같이 다니는 것이 부끄러웠다. 당시 고향인 경남 진주시에서 아버지 이성호(李聖鎬·75) 씨는 ‘도라지 또라이’로 통했다.

아버지 이 씨는 1954년 23세 때 도라지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평균수명 3년인 도라지가 죽지 않고 오래 자라게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가세는 기울었고 장남인 영춘 씨의 고교 등록금도 마련하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앉아 도라지 재배에만 열중했다. 결국 20년 넘게 사는 장생도라지 재배에 성공해 1991년 식물재배법으로는 국내 최초로 발명특허를 받기에 이른다.

하지만 도라지 가공공장을 짓다 보니 28억 원에 이르는 빚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1997년 아버지는 삼성항공(현 삼성테크윈) 인사과장으로 있던 영춘 씨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문을 배달하며 학교를 다닌 영춘 씨는 고졸 학력으로는 드물게 과장까지 올랐지만 아버지의 요청을 거절할 수 없었다.

구원투수로 대표이사가 된 영춘 씨는 도라지 생산에 항공기 생산방식(표준작업 공정관리 시스템)을 접목해 1년 만에 연매출액을 2400만 원에서 10억 원으로 끌어올렸다. 아버지가 도라지 연구를 시작한 지 51년이 지난 2005년 ‘장생도라지’는 매출액 53억 원의 기업으로 거듭났다. 아버지 이 씨는 이제 ‘도라지 박사’로 불린다. 동행을 부끄러워했던 아들은 아버지를 도라지 연구원장으로 모시고 있다.

■ 참살이 ‘새싹채소’ 한경희씨

“어디 먹을 게 없어 다 자라지도 않은 새싹을 먹느냐.”

한경희(韓慶熙·44) 씨가 2003년 말 건강나라라는 간판을 걸고 새싹채소 사업을 시작했을 때 반응은 차가웠다.

하지만 한 씨의 의지는 확고했다. 그는 고급요리를 치장하는 식용 꽃이 대부분 버려지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새싹채소가 요리를 장식하는 대안 재료가 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마침 불어닥친 참살이(웰빙) 열풍도 한몫했다.

새싹채소는 농약이나 화학처리가 되지 않은 씨앗을 심어 5∼10일 키운 다음 수확한 채소. 수확이 하루만 늦어도 폐기처분해야 한다.

2004년 8월 경기도농업기술원의 추천을 받아 신라호텔에 항암 성분이 있는 아마란스, 비트, 비타민 등 장식용 새싹채소를 대기 시작했다. 지금은 7곳의 특급호텔에 새싹채소를 공급한다.

한 씨는 “새싹채소에 대한 인식이 없어 구걸하듯이 호텔 영업에 매달렸다”며 “새싹의 싱그러움을 통째로 먹는 기분을 상류층에 홍보한 것이 성공 요인”이라고 말했다.

지금은 백화점에서 유통되는 식용 새싹채소와 호텔에 들어가는 장식용 새싹채소의 매출 비율이 7 대 3 정도. 호텔 납품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었다.

한 씨는 고교 졸업 후인 1983년 경기 광주시에서 농원을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을까’만을 고민했다. 지금 건강나라의 월매출액은 1억 원에 이른다.

▼전문가들 “작지만 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