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그는 의도했든 안 했든 항상 ‘숙명의 사나이’로 비쳤다. 이제 중동은 그의 숙명에서 벗어나게 될지 모른다.
샤론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재정립해 조국이 더는 안보 문제에 골머리를 앓지 않아도 되는 ‘대(大)이스라엘’을 건설하는 데 한평생을 바쳤다.
많은 사람은 믿었다. 샤론이 평화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의 독립과 이스라엘의 안전 보장을 맞바꿀 능력이 있다고. 또 그가 그렇게 해 주길 바랐다.
원래 샤론은 이스라엘의 안전 보장과 영토 확장이란 두 가지 원칙을 철두철미하게 지켜 온 인물이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 이후 추진된 유대인 정착촌 건설도 그의 작품이다.
그는 1948년 이스라엘 독립전쟁과 이후 벌어진 아랍 국가들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거두면서 이스라엘 국민에게 ‘하늘이 내린 사람’이란 이미지를 쌓아 갔다. 그는 정말 개혁적이고 단호하고 대담했다.
1982년에는 레바논을 공격했다. 이로 인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는 결국 레바논에서 튀니지로 쫓겨났다.
하지만 PLO는 튀니지에서 조직을 재정비했으며 이스라엘을 상대로 한 테러를 계속했다.
레바논에는 기독교 우파 정권이 들어섰다. 하지만 샤론과 공모한 기독교 민병대가 팔레스타인 난민 수백 명을 학살하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그뿐만 아니다. 레바논은 8년 동안 내전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샤론도 이스라엘에서 궁지에 몰렸다.
샤론의 사망은 이스라엘의 정국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샤론이 ‘이스라엘의 오늘’을 지배해 왔는데 앞으로 그의 공백을 메울 만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자로 현실과 이상을 겸비한 인물이었다.
우선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를 군사적으로 영원히 지배할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 또 이스라엘 점령지역의 팔레스타인 인구가 이스라엘 인구를 훨씬 앞질러 갈 것이란 것도 내다봤다. 이것이 현실이다.
그는 또 지정학적 상상력을 발휘했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확보한 땅 가운데 쓸모없는 땅을 버리고 중요한 지역에 대해선 정치적 영향력을 계속 확보할 수 있는 정치적 토대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자지구 철수가 바로 그것이다. 상대방에게 공격당하기 쉬워 군사적 중요도가 떨어지는 가자지구는 팔레스타인에 넘겨주는 대신 전략적 요충지인 동예루살렘을 이스라엘 땅에 포함시키는 것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의를 얻어 내겠다는 전략이다.
샤론은 가자지구 철수 이후 팔레스타인자치정부(PNA)가 무장단체 하마스를 무장해제도 못하고 제대로 통제하지도 못한다는 이유를 들어 평화협상 2단계로의 이전을 거절했다. 내부 분열로 인한 PNA의 붕괴가 이스라엘에 이득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재 정국은 국제사회에 팔레스타인이 통치 능력이 없으며 팔레스타인과의 평화 협상은 쓸모없다는 인식을 심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상황에 처해 있다. 하나는 평화 전략이고 나머지는 영구적인 투쟁 전략이다. 후자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건설 중인 철근 콘크리트 보안벽 뒤에 숨어 있는 것과 같다. 이라크에서 미국인들이 바그다드의 안전지대(그린 존) 안에 숨어 있는 것처럼. 이는 벽 안에 갇혀 벽 바깥에서 벌어지는 일에 전혀 손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