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를 입고 대금을 부는 광고 포스터 속의 젊은 여인이 상징하듯 최근 영화 드라마 CF 등에서 국악이 서양음악과 어울려 꽃을 피우고 있다. 국악을 ‘우리 것’이 아닌 월드뮤직의 일종으로 여기는 개방적인 젊은 청중들은 넘쳐나는 서양음악 사이에서 국악의 약진을 신선하게 받아들인다. 사진 제공 LG애드
《#장면1 개봉 10일 만에 전국 관객 300만 명을 넘긴 영화 ‘왕의 남자’. 조선시대 연산군 때를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에는 구슬픈 대금 연주가 바이올린, 첼로 등 현악기의 선율과 어울려 흘러나온다.
#장면2 백발의 지휘자가 신들린 듯 지휘봉을 휘젓자 80여 명의 연주자들이 가야금을 뜯고 북을 두드린다. 연주곡은 베토벤의 ‘운명’. 최근까지 방영된 LG의 기업 광고 ‘싱크 뉴-국악 편’의 장면이다. 중앙대 박범훈(58) 총장이 편곡한 이 곡에 대해 “음악 파일을 구할 수 없느냐”는 누리꾼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국악이 화면 속으로 들어간다. 드라마, 영화, 광고 등 현대인의 일상과도 같은 매체들을 통해 가야금이나 징 북 대금의 소리를 듣는 일이 잦아졌다. 그런 화면 속 국악기는 더는 홀로 고고하지 않다. 바이올린이나 피아노, 첼로 등 양악기들과 어우러져 ‘퓨전 국악’을 창조해내고 있다.
● 국악을 눈으로 본다… 화면 속 우리 음악
영화 ‘왕의 남자’의 음악을 맡은 기타리스트 이병우(41) 씨는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21세기 관객들이 보는 것이기 때문에 무작정 동양적인 음악보다 고리타분하지 않은 크로스오버 음악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11일 처음 방송되는 MBC 수목 드라마 ‘궁’은 한국이 입헌군주제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송병준(46) 에이트 픽스 대표와 8인조 월드뮤직 그룹 ‘두번째 달’이 음악을 맡아 ‘국악의 월드뮤직화(化)’를 이뤄냈다.
송 대표는 “주연급 연기자가 젊어 이들의 경쾌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국악 자체를 리듬감 있는 월드뮤직으로 승화시켰다”며 “선율은 한국적이지만 이를 아이리시 휘슬이나 만돌린 등으로 연주해 새로운 느낌”이라고 말했다.
최근 방영된 모 샴푸 광고에서는 파헬벨의 ‘캐넌’을 가야금 삼중주로 연주한 곡이 사용됐다.
● 새로움으로 평가받는 21세기 국악
음악 평론가들과 드라마나 영화 광고 음악 담당자들은 최근의 화면 속 국악 인기에 대해 △국악을 ‘우리 음악’이 아닌 ‘월드뮤직’이나 ‘제3세계’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젊은 청중들이 생겼고 △전 세계적으로 ‘크로스오버’ 열풍이 불고 있으며 △드라마 영화 광고 등에서 남발되는 서양음악과 차별화되는 것이 강점이라고 분석한다.
송 대표는 “록이나 힙합 등에서 느낄 수 없는 인간의 섬세한 감정을 국악이 표현해 주고 있으며 이는 구미 국가에서 불고 있는 월드뮤직 열풍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말했다.
국악평론가 윤중강(47) 씨는 “중요한 것은 무조건 국악기로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기타나 드럼 등 양악기나 현대악기와 접목시킴으로써 국악이 세계시장에서 새로운 월드뮤직으로 평가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