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로 정식 부임한 정명훈 씨는 10일 자신의 첫 연주회를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아닌 ‘소박한’ 중랑구민회관에서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시멘트 벽으로 된 곳에서는 소리가 공명이 안 돼 연주하기가 힘들다”는 한 단원의 말처럼 구민회관의 연주 환경은 열악했다. 또 출연자 대기실이나 분장실 등 부대시설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단원들은 리허설 후 무대 뒤에 삼삼오오 앉아 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하지만 연주회 자체는 결코 초라하지 않았다. 동네까지 찾아 준 ‘마에스트로’의 공연을 감상하기 위해 400석 규모의 구민회관에는 600명이 넘는 주민이 몰렸다. 좌석 문제로 약간의 소란이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관객은 시종 질서를 잘 지켰다.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도 간혹 울리던 휴대전화가 이날은 단 한 차례도 울리지 않았고, 서서 공연을 보던 소년에게 자신의 좌석을 양보하는 관객도 눈에 띄었다. 작품 해설을 한 서울시향의 오병권 공연기획팀장은 열렬한 박수로 호응해 준 객석을 향해 “박수 솜씨가 빈이나 뉴욕 공연장에 비교해도 손색없다”고 인사하기도 했다.
구민회관을 찾아다니며 무료 연주를 들려주는 ‘신년음악회’는 정 씨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기획이다. ‘관객이 오기를 기다리는 대신 관객을 직접 찾아가겠다’는 취지. 평소 공연을 접할 기회가 적은 이들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겠다는 ‘문화 나눔’ 운동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작 이날 공연의 ‘수준’을 끌어내린 것은 구태의연한 ‘의전’이었다. 두 번째 곡인 베토벤 교향곡 2번 1악장 연주가 끝났을 때 무대로 나온 오 팀장은 “큰 도움을 주신 분들”이라며 돌연 객석의 문병권 중랑구청장과 곽영훈 한나라당 정치발전위원회 중랑갑 위원장을 호명해 일으켜 세우며 인사시켰다.
“우리나라가 정말 ‘문화국가’가 돼 가는 것 같습니다. 저런 분들이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문화국가’는 공연 도중 기관장이나 정치인을 일으켜 세워 유권자에게 홍보하는 어설픈 쇼가 사라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 아닐까.
“시민을 위해 어디든 찾아가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며 열악한 무대에서도 최선을 다한 정 씨와 서울시향의 아름다운 음악에 어울리지 않는 옥에 티였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