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투’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이렇다.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 흙먼지 날리는 대로에 양측이 마주 선다. 마을 전체가 숨을 죽인 일촉즉발의 순간. 악당이 먼저 총을 뽑고, 먼저 총에 맞는다.
서부극 ‘OK 목장의 결투’는 1881년 10월 26일 미국 캔자스 주의 OK 목장에서 실제 벌어졌던 결투를 소재로 했다.
서부극답게 선악의 이분법이 선명하다.
보안관이 포함된 와이어트 어프 형제 대(對) 악당 클랜턴 일가.
30여 초 동안 수십 발의 총알이 오간 끝에 악당들은 모조리 쓰러지고 만다.
전설적인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1848∼1929)는 실존 인물이다.
서부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10대 후반부터 역마차를 호위하며 서부생활을 시작했다. 검은 말, 검은 코트, 챙이 넓은 검은 모자, 콧수염이 트레이드마크다.
미국사가 일천하지 않았다면 그 많은 서부극이 만들어졌을까. 서부극은 잃어버린 역사를 신화적 상상력으로 포장하는 작업이다. 서부극에서 역사는 허구로 덧칠된 판타지다. ‘정의의 수호자’ 어프는 그 판타지의 정점에 서 있다.
“할리우드의 서부는 엉터리다. 실제의 서부는 폭력과 공포, 본능의 세계였다. 보안관 어프는 150명을 살해했고 대부분은 등 뒤에서 쏜 것이었다. 이 살인 전통은 현대 미국의 마피아와 수많은 범죄조직, 그리고 베트남으로 계승됐다.”(영화감독 세르조 레오네)
OK 목장의 결투 역시 실재(實在)했지만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 상대방은 전날 밤을 카드게임과 술로 지새워 정상이 아니었고 일부는 총도 안 들고 있었다.
어프는 말년에 자신의 신화를 공고하게 해 줄 공간에 안긴다. 할리우드다.
그는 초창기 서부극 스타들과 친구가 됐고 어떻게 하면 빨리 총을 뽑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도 했다. 그리고 어프와 OK 목장의 결투를 소재로 수많은 영화가 만들어졌다.
어프는 1929년 1월 13일 81세의 나이로 곁에서 아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떴다. 한때 서부 제일의 총잡이치곤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신화를 만드는 건 신이 아니라 인간이다. 조작도, 덧칠도 인간의 몫이다. 결투를 둘러싼 진실이 무엇이든 어프를 거짓의 주모자로 비판할 수 있을까.
홍석민 기자 sm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