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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로 논술잡기]‘장영란의 그리스 신화’

입력 | 2006-01-14 03:02:00


◇장영란의 그리스 신화/장영란 지음/470쪽·2만3000원/살림

우리는 보통 산에 오를 때 무작정 출발하지 않는다. 먼저 지형과 지세를 읽고 등반의 성격에 맞게 준비물을 갖춘다. 논술과 구술도 마찬가지다. 성취하고픈 대상의 속성을 아는 데서 성패가 좌우된다.

구술은 ‘의미’의 대결장이다. 출제자의 의도가 논제 안에 스며들어 있고, 수험생은 마치 보물찾기처럼 문제 속에 숨은 의미를 찾아야 한다. 어떻게 읽어냈는지에 따라 풀어내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해석하기’는 구술의 출발점이다.

의미의 그물망을 추적하는 데에 신화만큼 좋은 텍스트가 또 있을까. 신화는 아기자기한 이야기 속에 보편 주제를 녹여낸 영원한 재해석의 보고이다. 그리스 신화를 통해 인간 정신의 원형을 발견해 내는 방법을 익혀 보자.

이 책의 미덕은 무엇보다 ‘꼼꼼히 질문하는’ 모범을 보여 주는 데 있다. 신들은 왜 죽지 않을까, 신들은 어떻게 먹고 마실까, 신들도 몸을 가질까 등을 궁금해하다 보면 어느덧 ‘불멸’과 ‘죽음’의 문제를 파고들게 된다.

그리스 신화는 또한 수많은 상징 읽기의 모태다. 여신 헤라의 상징 동물인 공작은 부챗살 같은 꼬리 모양 때문에 화려한 태양이나 권력을 상징한다. 밤에 활동하는 올빼미는 저녁에 반성적 사고를 갖는다는 점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의 상징 동물이 되었다.

그리스 신들은 싸움도 잦고 사랑도 하며 때론 부도덕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본래 비, 바람, 번개를 관장했던 날씨의 신 제우스가 최고의 신이 된 비결은 ‘결혼’에 있다. 법칙의 여신 테미스,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 등 수많은 여신을 아내로 삼아 그녀들의 속성을 소유해간 덕분이다. 제우스의 문란한 여성 편력은 청동기시대 후반에 그리스에 들어온 이민족의 신들과 결합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적 맥락을 알면 해석의 재미도 한층 높아진다.

무엇보다 그리스 신화에는 인간 사회에 던지는 보편적 메시지가 숨어 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숙명과 인과응보를, 밀랍 날개를 달고 추락한 이카로스는 인간의 오만에 대해 경고한다. 신화 읽기는 인간이 숙명적으로 갖게 된 본성들을 신과의 비교를 통해 명료하게 밝혀 준다. 이 책을 통해 고대 그리스의 자유로운 철학이 신화적 의미와 만나는 지점까지 통과한다면 학생들의 막연했던 독해 감각도 한층 세련되어지리라 기대해 본다.

권희정 상명대부속여고 철학·논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