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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파워그룹 그들이 온다]여성 외교관

입력 | 2006-01-16 03:05:00


지난해 외교통상부에서는 몇 가지 의미 있는 인사가 이뤄졌다.

본부 주요 국장 및 과장 자리에 사실상 처음으로 여성이 임명됐다. 강경화(康京和) 국제기구국장과 오영주(吳령姝) 국제연합과장이 주인공. 외교부의 다자정책 실무 지휘라인을 여성이 장악한 셈이다.

강 국장은 남성 외교관 10여 명과 경쟁해 국장 자리에 올랐다. 오 과장이 맡은 국제연합과장은 북미1과장, 동북아1과장과 함께 외교부 ‘빅3’ 과장으로 불린다.

외교부에서는 이를 여성 외교관이 본격적으로 외교무대 전면에 나서는 신호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 이젠 요직에도 여성들이 앉는다

‘외교관의 꽃’인 대사직에도 지난해 김영희(金英姬) 주세르비아몬테네그로 대사가 진출했다. 여성 대사는 김경임(金瓊任) 주튀니지 대사를 포함해 2명뿐이지만 공관장인 총영사 자리에도 조만간 여성이 발탁될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높아지는 외무고시의 여성 합격자 비율, 3년 연속 여성 외시 수석합격자 배출, 상대적으로 성 차별이 덜한 외교업무의 특성 등을 감안하면 머지않아 외교부에 ‘성 혁명’이 일어날 전망이다.

강 국장은 “외교는 기본적으로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직종에 비해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기에 유리하고, 일을 하다 보면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상회담 때 대통령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는 정상 통역 7명 중 유복렬(프랑스어), 서명진(일본어), 신희경(중국어) 외무관 등 3명이 여성이다.

○ 다자외교에서 더 두각

여성 외교관은 상대국 인맥과의 인간관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양자외교와 달리 여러 나라 외교관이 국제회의장에 모여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다자외교에서 두각을 나타낼 때가 많다.

주라오스 대사관에 근무 중인 이미연(李渼姸) 외무관은 제네바대표부에 근무 중이던 2004년 3월 세계무역기구(WTO) 금융서비스위원회 의장으로 뽑혀 1년간 금융시장 개방 문제를 주도적으로 조율했다.

강 국장은 2003년 3월 45개 회원국으로 구성된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산하 여성지위위원회 의장에 선출돼 2년 동안 전 세계 여성 관련 업무를 조정하기도 했다.

이들의 출중한 어학 실력과 여성 특유의 사교성이 국제무대 데뷔에 큰 힘이 됐다. 국제기구 의장 진출은 한국의 다자외교 위상 강화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외시 18회 출신으로 주유엔대표부 2등서기관, 인권사회과장을 거쳐 외교부 내 대표적인 인권문제 전문가로 꼽히는 백지아(白芝娥) 주제네바대표부 참사관과 외시 19회 수석합격자인 박은하(朴銀夏) 주중국 대사관 참사관도 다자외교에서 잔뼈가 굵은 차세대 유망 외교관들이다.

○ 허물어지는 금녀의 벽

외교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해외 공관인 주미 대사관은 수십 년간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2년 전 강수연(姜受延) 외무관이 부임하면서 ‘워싱턴=남성’이란 등식이 깨졌다. 외교부 북미국과 아시아태평양국 등 주요 부서에도 여성 외무관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여성 외교관의 사각지대’였던 중·남부 아프리카에도 여성 외교관이 부임할 전망이다. 선진국 공관인 ‘온탕’과 후진국 공관인 ‘냉탕’을 번갈아 가는 외교부의 인사 원칙에도 불구하고 여성 외교관의 아프리카 부임은 예외로 인정돼 왔다. 그러나 여성 외교관의 증가로 더는 ‘봐 줄 형편’이 못 된다는 게 외교부 측 설명.

외교부 인사담당자는 “여성이 거의 없을 때에는 건강과 복지를 이유로 오지 근무를 빼주는 배려를 할 수 있었지만 여성이 급격히 늘면서 자칫 남성 외교관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어 원칙대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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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한국의 콘디’ 포부만큼 고충도 커▼

여성 외교관의 활약이 커지면서 ‘한국의 콘돌리자 라이스(미국 국무장관)’를 꿈꾸는 여성 외교관이 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외교관이 겉모습처럼 화려한 것만은 아니다. 여성이기에 겪어야 하는 남모를 어려움 또한 적지 않다.

국내와 해외 공관 근무를 번갈아 해야 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하기가 힘들다는 게 공통적인 애로다. 남성 외교관은 해외 근무 시 온 가족이 함께 임지로 떠나지만 여성 외교관은 가족과 장기간 ‘생이별’을 하는 게 대부분이다.

오영주 국제연합과장은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과 떨어져 해외에서 ‘싱글 맘’으로 몇 년씩 지내야 하기 때문에 남편과 나, 아이 모두 말 못할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외교관 부인을 둔 남편은 본의 아니게 몇 년씩 ‘기러기 아빠’가 되기도 한다. 이 때문인지 외교통상부에는 김원수(金垣洙·외시 12회·정책기획국장) 박은하(주중국 대사관 참사관) 부부를 비롯해 부부 외교관이 13쌍이나 된다. 이들은 해외근무 때 가급적 같은 공관에 발령받곤 했다.

윤종구 기자 jkmas@donga.com

▼여성 외시 합격史▼

외무고시 여성 합격자 1호는 1978년 12회에 합격한 김경임 주튀니지 대사. 그는 이후 만 6년 동안 홍일점 직업 외교관이었다.

이어 1991년까지 13차례 치러진 외시에서 합격한 여성은 고작 5명이었다. 여성이 처음으로 복수 합격자를 배출한 것은 3명이 합격한 1992년(26회).

그러다가 1997년 전체 합격자 45명 가운데 20%인 9명을 차지하면서 여성 합격자가 무더기로 나오기 시작했다. 2001년에는 11명이 합격해 처음으로 두 자릿수를 기록했다.

2002년에는 역대 최다인 16명이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에는 마침내 남성 합격자를 추월했다. 전체 19명 중 10명이 여성이었다.

여성 합격자가 늘면서 2000년대에는 대부분의 수석 합격자가 여성이었다. 2001년, 2003∼2005년 수석을 모두 여성이 차지했다. 현재 사무관(5급) 이상 여성 외무관은 120명으로 전체 1246명 가운데 9.6%다. 1∼3급은 3명에 불과하지만 4, 5급은 117명이나 된다.

이들이 고위직으로 진출하는 10여 년 후에는 외교부 간부의 인적 구성에 큰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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