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과 벨기에 브뤼셀의 시민까지 쇼핑을 하러 오게 만드는 프랑스 릴의 고급 쇼핑 공간 유라릴. 릴 유럽 역과 릴 플랑드르 역 사이의 버려진 땅에 세워진 이 대규모 쇼핑문화공간은 릴을 기차 타고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목적지로 만들었다. 릴=이진구 기자
엄청난 인파였다. 서울의 코엑스몰이 연상됐다. 그러나 이곳은 겨우 인구 20만 명인 프랑스 동북부의 작은 도시 릴의 유라릴(Euralille) 상가.
덩치는 작지만 도시로서 릴의 이력은 녹록지 않다. ‘플랜더스의 개’로 널리 알려진 플랑드르의 중심지가 바로 릴이다. 세계 최초로 무인 전차를 놓은 도시이며 프랑스에서 루브르 다음 규모의 박물관을 갖춘 도시이기도 하다. 과거 릴에 부를 가져왔던 것은 석탄과 철강업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릴의 혈맥은 철도다. 1994년 개장한 복합공간 유라릴은 릴에 피가 제대로 돌게 하는 심장과 같은 존재다.
○ 철도가 가져다준 도약의 기회
릴에는 두 개의 거대한 역이 있다. 옛 역인 릴 플랑드르와 새 역인 릴 유럽. 유라릴은 이 두 개의 역 사이에 있던 1만5000여 평의 황무지에 새롭게 세워진 복합공간이다. 상가, 아파트, 사무실, 학교가 망라된 이 복합공간은 한때 프랑스 최고의 실업률로 고민하던 릴에 5000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 주었다. 자본금의 100배에 이르는 투자가 유치됐다. 유라릴의 성공에 힘입어 현재는 유라릴 인근의 터를 흡수해 3만 평 규모의 추가 공간을 짓는 2단계 공사가 진행 중이다.
릴의 주 산업이었던 광업은 1970년대 들어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다. 직물산업도 버티기 힘들었다. 저임금을 기반으로 필사적으로 덤벼드는 한국 같은 후발 경쟁국들의 도전에 버텨 낼 수가 없었다.
릴의 공장들은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 고용을 생존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거주지가 도시에 형성되면서 주민들 간에 갈등이 부풀어 갔다. 릴은 막다른 골목으로 밀려갔다.
1973년 취임한 피에르 모로아 시장은 도시를 살릴 돌파구를 마련해야 했다. ‘불도저’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28년을 재임한 그가 찾은 답은 ‘철도’였다. 릴은 프랑스 벨기에 영국을 연결하는 삼각형의 한가운데 있었다. ‘삼국을 연결하는 허브 역이 된다’는 도시 발전 전략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테제베(TGV)노선 계획은 이미 릴보다 더 서쪽의 도시 아미앵을 거쳐 해저터널로 영국과 연결되는 것으로 수립돼 있었다. 게다가 터널의 위치 선정은 영국이 동의해야 하는 국제적인 계획이었다. 결국 릴을 통과하는 노선이라야 더 많은 국가와 연결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안에 영국이 설득됐다. “당시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가 우리의 구세주였다”고 릴 시의 공보관은 회고한다.
○ 환승지에서 목적지로
기회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만들어 냈다. 새 노선이 마련되자 기존의 릴 플랑드르 역을 옆에 두고 새 역을 건설해야 했다. 두 역 사이 1만5000여 평의 빈 땅이 자칫하면 흉물로 남을 위기였다. 이때 유라릴메트로폴(Euralille-Metropole)이라는 민관(民官) 합자 개발회사가 설립됐다. 유라릴메트로폴은 8명의 건축가를 초대했다. 그들에게 개발 회사가 요구한 것은 구체적인 디자인이 아니라 이 도시에 대한 철학과 비전이었다. 네덜란드의 건축가 램 콜하스가 총괄 책임건축가로 선정됐다.
‘유라릴’은 철도역이 아니라 도시 릴을 위한 계획이었다. 이 초대형 상가를 살리겠다고 기존 도심의 상권을 황폐화시킬 수는 없었다. 유라릴 상가에 입주하려는 사업자에게는 기존 도시의 상가를 철수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걸었다.
유라릴메트로폴은 건물의 크기뿐 아니라 건물의 질적인 수준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고 있었다. 시민 공무원 언론인 심지어 철학자도 포함된 위원회가 매월 모여 건축가를 선정한 뒤 건물의 질적인 문제를 검토하고 전략을 만들어 나갔다.
릴은 점차 환승지가 아닌 목적지로 탈바꿈해 나갔다. 역 인근에 대형 문화공간 그랑팔레가 완성됐다. 그랑팔레의 전시장 세 홀에는 각각 파리홀, 브뤼셀홀, 런던홀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기차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화려하고 우아한 유라릴의 상가를 걸어 다니다 자연스럽게 도시 내부의 문화공간으로 흘러들었다.
릴은 제노바와 함께 2004년 유럽문화도시로 지정됐다. 유럽연합(EU)의 기금으로 릴은 저소득층이 모여 사는 도시 남쪽에 새로운 문화시설 메종폴리를 세웠다. 폐허였던 맥주공장 직물공장이 주민들을 위한 음악회 전시회가 열리는 문화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철도가 생기를 불어넣은 도시 릴은 이제 시민의 참여로 명실상부한 문화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릴은 프랑스에서 지방세율이 가장 높은 시로 꼽힌다. 후임 시장에게 자리를 넘긴 불도저 시장은 말한다. “나는 시를 바꾸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나는 마술사가 아니다. 변화는 투자를 필요로 한다.”
릴=서현 교수·한양대 건축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