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명복을 빕니다]민관식 前대한체육회장

입력 | 2006-01-17 03:11:00

16일 타계한 민관식 전 대한체육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장남 병의, 차남 병찬, 3남 병환 씨(왼쪽 안쪽부터)가 조문객들을 맞고 있다.김재명 기자


16일 별세한 소강 민관식(小岡 閔寬植) 전 대한체육회장은 그의 개인사가 한국의 정치사, 사회사, 체육사라고 할 정도로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했다.

고인은 정계와 관계에 몸을 담고 있었지만 무엇보다 체육계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한국 체육 중흥의 산파역’으로 불리고 있다.

젊은 시절 탁구와 테니스 선수로 직접 뛰었던 고인은 사무실 문에 ‘평생 학습, 평생 현역’이라는 글귀를 써 붙여 놓고 매일 3km씩 걷는 것을 생활화했다. 최근까지도 ‘80대 청년’의 모습을 간직해 온 그는 별세 전날에도 지인과 테니스를 잠시 즐겼고 자택에 돌아와서도 헬스를 했다고 한다. 16일 아침 인기척이 없어 침실을 들여다보니 깊은 잠에 빠진 듯이 타계해 있었다고 유족은 전했다.

이날 빈소에는 이회창(李會昌) 전 한나라당 총재, 김종필(金鍾泌) 전 자민련 총재, 이홍구(李洪九) 이수성(李壽成) 전 국무총리, 이에리사 태릉선수촌장, 여야 국회의원 등 정관계와 체육계 인사들의 조문이 이어졌다. 생전에 축구 육상 테니스 탁구 정구 등 5개 종목의 단체장을 맡았던 고인은 자신의 아호를 딴 ‘소강배 전국중고테니스대회’를 창설해 50여 년이 넘도록 사재를 털어넣었다.

또한 1964∼1971년 제22대 대한체육회장을 맡아 체육인들의 꿈이었던 서울 중구 무교동 체육회관과 ‘금메달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을 건립했다. 노년에도 대한체육회 명예회장, 동아마라톤 꿈나무재단 이사장을 맡는 등 체육계에 각별한 애정을 쏟아 왔다.

1918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기고의 전신인 경성제일고보와 수원고농(현 서울대 농생대)을 졸업한 뒤 일본으로 가 교토(京都)제국대 농예화학과를 수석으로 마쳤다.

6·25전쟁이 끝난 직후 고려시보사 사장으로 한때 언론계에 투신했던 그는 1954년부터 1967년까지 서울 동대문구에서 3, 4, 5대 민의원과 6대 국회의원에 내리 4번 당선됐다. 1971년에는 문교부 장관에 임명돼 관계에 진출했다가 1978년 12월 10대 총선 때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서울 종로-중구에서 공화당 후보로 당선돼 정계에 복귀했다.

1980년 전두환(全斗煥)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계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남북조절위원회 공동위원장 대리,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민자당 신한국당 한나라당 상임고문을 지내는 등 자유당 시절부터 50여 년간 정치와의 끈을 놓지 않았다.

장례식은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강영훈(姜英勳) 전 국무총리가 호상(護喪)을 맡았다.

김정훈 기자 jngh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