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시장의 테마주가 문제 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일화가 있습니다. 북방외교가 한창이던 1987년 만들어진 ‘만리장성 4인방 테마’가 그것입니다.
중국 정부가 만리장성에 바람막이를 설치하는데 대한알루미늄이 알루미늄 새시를 납품할 것이라는 소문으로 상한가를 쳤습니다.
검정 고무신을 만드는 태화는 ‘인부들 신발을 납품한다’는 루머로, 삼립식품은 인부들이 먹을 간식이 호빵으로 결정됐다는 소문으로, 한독약품은 인부들이 호빵을 먹다 체하면 소화제로 훼스탈이 공급된다는 소문으로 상한가 대열에 가세했습니다.
어이없는 이야기 같지만 이런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중견 탤런트가 주주로 참여한다는 소식에 한 코스닥 등록기업의 시가총액은 갑절로 늘었습니다. 또 다른 회사는 “우리는 줄기세포와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줄기세포 테마주 선두주자로 부각되기도 했죠.
만리장성 4인방 테마만큼 황당한 일입니다.
선진 증시로 평가받는 미국에서는 이런 황당한 테마주가 발붙일 곳이 없습니다. 테마로 부각되려면 사실이나 논리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미국에서 수년 전부터 인기 테마인 ‘삶의 질’ 관련 테마는 메릴린치가 2000여 명의 소비행태를 조사하고 기업실적 변화를 예측한 뒤 발표한 역작입니다. 광우병이 발병했다고 닭고기 회사 주가가 뛰는 식의 국내 테마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테마는 전문가와 투자자, 기업, 언론 등 증시 참여자들의 종합적인 수준을 보여 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엉터리 테마가 등장하면 전문가와 언론이 공격합니다. 투자자도 자연히 이를 외면합니다. 엉터리 테마에 속한 종목은 오히려 주가가 폭락하는 일이 많습니다.
증시는 이제 온 국민이 관심을 갖는 중요한 경제 영역입니다. 초등학생까지 주식투자가 무엇인지 배우니까요. 증시가 엉터리 테마가 판치는 투기장이 된다면 그 피해는 국민 모두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시장 참여자의 감시와 ‘옥석 가리기’가 필요한 때입니다. 증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부터 건강한 주식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완배 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