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루앙의 국립제빵제과학교 학생들이 실습에 몰두해 있다. 풍미 있고 부드러운 크루아상과 달콤한 초콜릿, 각양각색의 케이크가 이들의 손을 통해 태어난다. 루앙=금동근 특파원
《지난해 안방을 달궜던 ‘삼순이 열풍’ 덕택에 갑자기 인기가 높아진 직업이 있다. 바로 삼순이가 연기한 파티시에(p^atissier)다. 파티시에는 케이크나 과자, 초콜릿을 만드는 제과 기능인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내 이름은 김삼순’이 방영되는 동안 파티시에의 위상은 높아졌고 제과학원은 수강생들로 붐볐다.》
프랑스 루앙의 국립제빵제과학교(INBP·Institut National de la Boulangerie P^atisserie)에서 제과 과정을 밟고 있는 김형주(26·여) 씨도 삼순이 덕을 크게 봤다. 김 씨는 2004년 공과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 대신 파티시에 쪽으로 진로를 잡았다. 어릴 때부터의 꿈이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김 씨의 부모는 “왜 갑자기 제과 기술을 배우겠다고 하느냐”며 반대했다. 친구들도 “공대생이 무슨 밀가루 반죽이냐”며 우려했다. 그러던 주변의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김 씨가 지난해 한국에 갔을 때 친구들은 모두 그를 부러워했다.
12일 INBP에서 만난 김 씨는 “이곳에서의 생활에 100% 만족한다”고 말했다. 체계적이면서 집중적으로 이론과 기술을 가르치는 INBP의 과정이 기대했던 것 이상이라는 얘기였다.
∇삼순이가 되려는 사람들=이날 INBP는 조용했다. 시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제과나 제빵 과정을 6개월간 마치고 나면 각각 CAP(Certificat d'aptitude profession-nelle)라고 하는 국가자격증 시험에 응시한다. 프랑스에서 이 분야의 일을 하려면 반드시 따야 하는 자격증이다. 이날 시험은 CAP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학교 차원에서 실시하는 모의고사였다. 시험은 이론과 실습으로 나눠 진행됐다.
그 와중에 2층의 제과 과정 실습실 한 곳이 소란스러웠다. 교사와 학생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이날은 초콜릿을 만들어 품평을 하는 날. 이런저런 모양의 초콜릿이 조리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 가운데 상당수는 실패작이었는지 모양이 일그러져 있었다. 학생들은 실패작을 놓고 교사와 함께 원인을 따지는 중이었다.
1층의 제빵실습실에선 학생들이 크루아상 만들기에 한창이었다. 밀가루 반죽을 밀대로 밀고 칼로 자르고 모양을 내는 과정을 반복했다. 학생들은 식칼로 반죽을 삼각형으로 잘라낸 뒤 둘둘 말아서 크루아상 모양을 척척 만들어냈다.
∇불랑제냐 파티시에냐=INBP는 학교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곳은 불랑제(boulanger·제빵 기능인) 또는 파티시에를 양성하는 곳이다. 다른 요리 과정은 없다.
제빵과 제과 과정은 각각 6개월씩. 학생들은 한 과정만 선택해 배울 수도 있고 두 과정을 모두 수료할 수도 있다. 아프리카 출신의 한 학생은 “제빵은 밀가루 하나만 재료로 해서 이렇게 반죽하고 저렇게 빚고 계속 같은 일을 반복해 단조로워 보인다”면서 “각양각색의 케이크나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제과 과정이 훨씬 재미있다”고 말했다.
반면 제빵실습실에서 만난 베네딕트 게레키(22·여) 씨는 빵 만드는 묘미에 푹 빠져 있었다. 게레키 씨는 특히 밀가루 반죽을 하는 순간이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그는 “반죽을 할 때는 사랑을 나누는 기분이 든다”고 표현했다. 이곳에 오기 전 영양학을 공부했다는 그는 “밀가루를 빚어서 빵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하다 보면 내가 마술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졸업생 15%는 외국인=INBP 졸업생 가운데 졸업과 동시에 CAP를 따는 학생은 100%에 가깝다. 6개월간의 짧은 교육 과정이지만 집중적으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수업은 오전에 이론을 배우고 오후에는 실습을 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월∼금요일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시간표가 꽉 짜여 있다. 오후에는 앉을 틈도 없이 수업이 진행돼 학생들은 일과가 끝나면 녹초가 될 정도다.
학교의 주요 목표 가운데 하나는 단 1명의 수강생이라도 중도 탈락하는 일이 없도록 이끄는 것. 김 씨는 “한국에선 잘 못하면 선생들이 윽박지를 때가 많은데 이곳은 뒤처진 학생일수록 더 신경을 써서 이끌어 준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만족한 실습 결과를 얻을 때까지 재료를 무제한 공급하는 것도 장점이다.
이 학교를 졸업하고 CAP를 취득한 학생들은 앞날이 어느 정도 보장된다. 프랑스에서 직업학교를 마친 뒤 반드시 거치게 돼 있는 인턴십 자리를 구할 때 INBP 출신이라고 하면 업체들이 두 손 들어 환영하기 때문.
매년 이곳을 졸업하는 200명가량의 졸업생은 파리를 비롯한 프랑스 전역의 대형 제과점이나 제과 코너가 있는 대형 슈퍼마켓으로 진출한다. 외국인 학생은 졸업생의 15%가량을 차지한다.
루앙=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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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슈아르 교장 인터뷰
INBP의 제라르 브로슈아르(사진) 교장은 “제빵과 제과를 과정 가운데 하나로 가르치는 일반 요리 학교와 달리 이곳은 제빵, 제과에만 집중한다는 게 장점”이라고 자랑했다.
1972년에 설립된 이 학교는 전국 제빵사 제과사 협회의 후원을 받는다. 따라서 졸업 후에 관련 업계로 진출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브로슈아르 교장은 소개했다.
1년에 200명 정도로 제한하여 학생을 받아들이는 것도 이 학교의 특징. 브로슈아르 교장은 “일대일 교육이 가능하도록 교수진과 시설이 수용할 수 있는 만큼만 뽑는다”고 말했다.
선발 조건은 크게 까다롭지 않다. 외국인으로서 이 학교에 입학하려면 프랑스어 능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브로슈아르 교장은 “‘밀가루 반죽과 설탕을 섞어라’는 말 정도만 알아들으면 된다”고 했다.
외국인 학생 가운데는 한국과 일본에서 온 학생이 가장 많다. 그는 “한국 학생들은 특히 성실하고 똑똑해서 수업을 잘 따라가는 편”이라고 평가했다. 외국인 학생은 학교 측에서 숙소를 직접 소개해 주는 등 생활에 불편이 없도록 배려한다. 루앙은 집세가 파리의 3분의 1 수준으로 싸다는 것이 장점. 수업료는 6개월에 6000유로(약 720만 원).
18세 이상으로 입학 나이를 제한한 이유는 이 학교의 설립 목적 때문. 그는 “성인 가운데 이쪽으로 직업을 선택하거나 바꾸려는 사람들을 교육해 사회로 진출시키는 게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의 나이는 18세부터 45세까지 다양하다.
INBP는 한국에 분교를 만들 계획을 갖고 있다. 브로슈아르 교장은 “아직 계획이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한국에 직원 한 명을 둬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루앙=금동근 특파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