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름의 시대. 인간 몸 안에 깃든 축축한 본성을 찾아 떠난다. 눈물, 땀 등 체액을 통해 인간의 본성을 성찰하는 얀 파브르의 현대무용 ‘눈물의 역사’. 사진 제공 예술의전당
탄생의 눈물, 노동의 땀, 배설의 오줌…. 우리의 삶은 ‘눈물의 순례기’이다. 눈물과 땀, 오줌 등 우리의 몸에서 스며 나오는 체액은 단순한 화학 물질이 아니다. 그 물엔 고통과 환희, 쾌락과 성찰 등 우리의 인생이 담겨 있다.
2005년 아비뇽 축제의 개막작으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불러일으켰던 얀 파브르 트루블렌 컴퍼니의 현대 무용 ‘눈물의 역사’가 2월 10∼12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다.
안무자인 얀 파브르(48)는 아방가르드 현대무용의 최정상에 있는 인물. 벨기에 출생으로 화가, 조각가, 희곡작가, 오페라·연극 연출가, 안무가, 무대 및 의상 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현대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불리는 경계 없는 예술가이다.
그가 전설적인 곤충학자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라는 사실도 흥미롭다. 실제로 곤충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 그의 다방면에 걸친 예술활동에서 영감의 원천이 됐다. 조형미 넘치는 그의 안무도 곤충과 동물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만든 것.
파브르는 1970년대 말 입장료로 받은 돈을 불태워 그 재로 ‘돈(money)’이라고 쓰는 파격적인 공연을 선보이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무려 8시간짜리 연극 ‘이것이 바라고 예견해 왔던 연극이다’를 선보여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유명한 신체 3부작 ‘달콤한 유혹’ ‘세계적인 저작권’ ‘불타는 성상들’을 통해 몸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드러냈다. 이후 체액으로 형상화된 그의 몸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에 들어 ‘나는 피다’와 ‘울고 있는 육체’로 이어졌다. 이번에 공연되는 ‘눈물의 역사’는 체액 3부작의 완결편.
얀 파브르
인간의 피를 요구했던 중세사, 전쟁, 여성의 생리 등을 소재로 했던 ‘나는 피다’는 가장 쇼킹했던 작품. 피범벅이 된 무용수들의 춤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시각적 충격을 던져 줬다. 공연 도중 뛰쳐나가는 사람도 적지 않았을 정도.
이번에 공연되는 ‘눈물의 역사’는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느끼는 고통과 고단함, 환희 등을 모두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체액으로 표현한다. 18명의 단원은 약 1시간 반 동안 유리 항아리를 들고 눈물을 흘리거나, 땀을 흘리면서 다양한 인생을 표현한다. 특히 눈 위로 쏟아지는 노란 오줌줄기 장면 등 남녀 무용수들이 나체로 표현하는 여러 장면은 관객들에게 낯선 체험을 던져 준다.
최준호 예술의전당 예술감독은 “이 작품은 체액의 상실을 통해 자연적인 육체에 가해지는 검열을 우의적으로 보여 준다”며 “인간의 몸에서 나오는 물에 대해 흉하다, 더럽다, 냄새난다 하는 이성적 인식에서 벗어나 그 속에 담긴 자유로운 본성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2월 10∼11일 오후 7시 반, 12일 오후 4시. 2만∼8만 원. 02-580-1300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