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패러디/기억력 좋은 국민들 세상읽기] ‘노무현대통령님께’

입력 | 2006-01-19 17:24:00


다음은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내정자의 칼럼 패러디 [기억력 좋은 국민들의 세상읽기]‘노무현 대통령님께’전문

미증유의 경제적 양극화(빈부격차)를 극복하느라 불철주야 애쓴 노고에 우선 깊은 감사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보도에 따르면 2006년 경제성장률이 5%에 육박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는 바닥을 치고 있으며 집권당 열린우리당은 ‘총선 대박’의 기쁨을 맛본 지 불과 2년도 안돼 지금의 간판을 유지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게 됐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됐던 것일까요?

저는 노무현 정부의 성공과 나라의 번영을 바라는 유권자로서 대통령님의 상황 인식과 대처방식에 대한 이견(異見)을 말하고자 합니다. 1월 유시민 의원을 보건복지부 장관으로 발탁했을 때 보건의료 관련 시민단체들은 “유 의원은 시기에 따라 소신을 매우 자주 바꾸는 의원”이라며 그의 ‘비개혁, 무능, 오락가락한’ 행보를 인용하면서 복지부 장관 임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한 여당을 포함 정치권은 물론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언론이 ‘예외없이’ 그의 복지부장관 임명을 ‘부적절’하다고 비판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그때 저는 국민여론에 맞서 ‘정치적 충돌실험’을 감행하는 대통령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정치인 노무현’이 맞는지를 물었습니다. 대통령님은 이 모든 항의를 묵살했습니다.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인의 장막’을 경계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저는 대통령님이 현금의 정치적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대안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지금의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신념과 전력을 따지지 않고 사람을 끌어모아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하려는 것인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습니다.

2002년 개혁당, 2003년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면서 대통령을 따르는 인사들이 입버릇처럼 “백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노라”고 한 말을 기억합니까? 이 약속은 아직 지켜지지 않았고, 이대로 나가면 열린우리당 역시 민주적으로 스스로 노선과 정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대통령의 도박 같은 승부수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고, 이용만 당하는 ‘노무현당’이 되고 말 것입니다.

주가상승과 대북정책에서 거둔 성공에도 불구하고 정부 여당이 정치적 궁지에 빠진 원인이 무엇입니까. ‘수구세력의 저항과 음모’ 때문이 아니라 개혁 의지를 포기하고 제풀에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재벌개혁과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등 중요한 선거공약을 폐기하거나 지키는 시늉만 했습니다.

삼성과 친노직계 정치인들만 곁에 두고 편하게 정치를 하는 길로 너무 일찍 들어서 버린 탓으로 ‘대연정 파동’, ‘삼성 X파일 파문’, ‘황우석 사태’ 따위의 정치, 경제적 추문이 연이어 터진 것입니다.

‘친노직계 참모의 전진 배치’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님은 청와대를 비롯 주요 장관과 정부산하기관장, 심지어 폼나는 스포츠단체의 장까지 이른바 ‘영남출신 노빠 정치인’으로 채웠습니다.

게다가 대통령님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해놓고 사태 수습이 급급해질 때마다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불러모아 거의 혼자서만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애당심’을 특별히 강조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그간 열린우리당를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줍니다. 나름의 뚜렷한 소신과 역량을 가진 정치인들이 많이 있는데도 대통령님께서 ‘예스 맨’만을 중용한다는 비판이 들리지 않는지요.

대통령님.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을 가까이 두십시오. 대통령님의 독선을 지적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저 개인은 앞으로 대통령님을 비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희망과 애정을 잃으면 비판할 의욕도 잃게 됩니다.

저는 대통령님에 대한 기대를 이제 온전히 접었습니다. 2년이면 실망하기에 충분히 긴 세월이었습니다. 미움보다 더 아픈 것이 냉소와 무관심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통령님의 건승을 기원합니다.

평시민(기억력 좋은 국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