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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이야기]賤(천)

입력 | 2006-01-20 03:03:00


우리는 사람이 ‘賤(천)하다’라는 말을 한다. ‘賤’이 ‘천하다’라는 의미를 갖게 된 이유를 살펴보자. ‘賤’은 ‘貝(패)’와 ‘(잔,전)(잔)’이 합쳐진 한자이다. ‘(잔,전)(잔)’은 ‘戈(과)’가 위아래로 두 개 쌓여 있는 형상을 나타낸다. ‘戈’는 ‘창’이다. 그러므로 ‘(잔,전)’은 ‘두 개의 창이 쌓여 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이러한 상태로부터 다음과 같은 ‘(잔,전)’의 의미가 나온다. ‘창’에 주목하면 ‘(잔,전)’의 의미는 ‘해치다’가 되며, ‘가늘고 긴 두 개의 창’에 주의하면 ‘가늘다’가 되고, ‘쌓여 있음’에 주의하면 ‘쌓임, 중복’이 된다. ‘쌓아 놓은 사물’은 또한 당장 사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므로 ‘나머지’라는 뜻도 갖게 된다. 이것이 ‘(잔,전)’의 기본적인 의미이다.

‘踐(천)’은 ‘足(족)’과 ‘(잔,전)’이 합쳐진 글자이다. ‘足’은 ‘발’을 나타내며, ‘(잔,전)’은 ‘쌓다, 중복’을 나타내므로 ‘踐’은 ‘발걸음을 중복하다’, 즉 ‘계속하여 걷다’가 된다. ‘踐’의 의미인 ‘밟다, 걷다’는 이로부터 나온 것이고, ‘실천하다’는 ‘계속하여 걷다’라는 의미가 추상화된 것이다. ‘殘(잔)’은 ‘(대,알)(알)’과 ‘(잔,전)’이 합쳐진 자이다. ‘(대,알)’은 ‘부서진 뼈’를 나타내며, ‘(잔,전)’은 ‘쌓다, 중복’을 나타내므로 ‘殘’은 ‘부서진 뼈가 쌓여 있는 것’을 나타낸다. 이 경우의 뼈를 사람의 뼈로 보면 ‘殘’은 ‘잔인하다, 멸망시키다’라는 의미를 갖게 되고, 뼈를 먹다 남은 짐승이나 생선의 뼈로 보면, ‘殘’은 ‘먹다 남은 음식, 나머지’라는 뜻이 된다. ‘殘額(잔액)’의 ‘殘’은 ‘나머지’라는 뜻이기 때문에 ‘殘額’은 ‘남은 돈’이 된다.

이제 ‘貝’와 ‘(잔,전)’이 합쳐진 ‘賤’을 살펴보자. ‘貝’는 ‘조개’라는 뜻인데, 고대 중국에서는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한 적이 있다. 이 시기로부터 ‘貝’는 ‘재물, 재화’의 뜻을 갖게 되었다. 이에 따라 ‘賤’은 ‘재물을 쌓아 놓은 것’을 나타낸다. ‘賤’이 ‘천하다, 천하게 여기다, 신분이 낮다’라는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은, 부정하게 모은 재물을 쌓아 놓고 있다는 데에서 나온 의미이다. 고대의 중국인들도 부정한 축재는 賤하게 여긴 모양이다.

허성도 서울대 교수·중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