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민이가 요즘 통 밥을 안 먹네. 한창 키가 클 나이인데….”
요즘 아내는 승민이의 밥과 반찬 투쟁에 걱정이 많다. 그러다 보니 주위에선 철분이 부족하면 식욕이 떨어진다며 철분제를 먹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엔파밀 분유, 폴리비졸 비타민제, 플린스톤 종합 영양제….
한동안 인터넷에서 철분제에 관심이 있어 ‘철분강화’ 제품들을 찾아보니 대부분이 외국 유아용품 판매 사이트에서 인기를 끄는 제품들이었다.
정말 철분 보충이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외국 제품에 대한 막연한 기대심리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들 제품을 비싸게 공수해 먹이는 엄마들이 은근히 많았다.
철분은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가장 신경 써야 할 영양소이다. 아기는 빨리 자라기 때문에 그만큼 피도 많이 필요해 생후 9개월에서 세 돌까지는 10명 중 1명꼴로 빈혈에 걸린다.
철분은 뇌의 신경전달물질을 만드는 보조효소로 작용하여 부족할 경우 집중력과 지능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철분은 모자라도 문제이지만 과잉일 경우도 문제다.
건강한 아기에게 철분제를 먹이면 효과보다는 부작용만 나타날 확률이 크다. 이가 시커멓게 되거나 주근깨처럼 얼굴에 색소 침착이 생기기도 한다. 위장장애가 생겨 토하거나 메스껍다고 하거나 오히려 밥을 더 안 먹거나 복통을 호소할 수 있다.
따라서 철분제는 처방을 받아 먹이는 게 안전하다. 아기가 잘 안 먹거나 잘 보채고, 혈색이 안 좋거나, 기운이 없어 보이는 등 빈혈이 의심되면 먼저 병원에서 피검사를 해보는 게 좋다. 빈혈로 진단되면 체내에 고갈된 철분을 충분히 보충해야 하므로 철분제를 2, 3개월은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철분강화제품에는 일일 권장량만큼 철분이 들어 있으니까 이것만 먹이면 빈혈이 안 생길 것이라고 장담은 못한다. 여기에 들어 있는 합성철은 천연 철분에 비해 흡수율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철분 함량이 철분제에 비해 4분의 1 정도만 있어 빈혈을 예방하기 위해 먹일 순 있어도 치료하기 위해 먹이기엔 부족하다.
최고의 철분 급원 식품은 고기다. 단백질에 둘러싸여 다른 철보다 흡수가 10배정도 잘 되는 ‘헴철’은 고기에만 들어 있다. 따라서 엄마 뱃속에서 받아 나온 철분이 고갈이 되는 시점인 생후 만 6개월 이상이 되면 고기를 잘게 간 이유식을 먹여 철분을 충분히 공급해 줘야 한다.
승민이는 검사 결과 빈혈은 아니어서 한숨 놓였다. 밥도 잘 안 먹는데 비린내까지 나는 철분제는 사약만큼 먹이기 힘들지 않았을까?
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