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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프리즘]‘우승 청부사’ 루니와 캐칭

입력 | 2006-01-20 03:03:00


‘미국 용병남녀’가 코트를 달구고 있다. 프로배구 현대캐피탈의 숀 루니(24·206cm)와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의 타미카 캐칭(27·187.8cm)이 그들이다.

루니는 15일 현재 ‘만년 2위’ 현대캐피탈의 선두 질주(15승 1패)를 이끌고 있고 캐칭은 1승 4패로 허덕이던 우리은행을 ‘5연승’으로 내닫게 했다.

대단하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미국 스포츠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 금세 알 수 있다. 그들은 팀의 ‘우승 청부사’라는 점말고도 닮은 꼴이 많다. 한국스포츠의 지향점이기도 하다.

그들은 신체가 골고루 단련돼 있다. 루니는 어릴 적부터 안 해본 운동이 없을 정도로 ‘스포츠 만능’이다. 고교 골프대표선수로 주 대회 우승도 한 적 있으며 농구도 즐겼다. 최근엔 파도타기에 빠졌고 한국에 오기 전에는 비치발리볼 선수로 활약했다.

배구를 본격 시작한 것은 대학 때. 하지만 지난 2년 연속 미국대학 배구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될 정도로 급성장했다. 루니는 배구 솜씨 면에선 어수룩한 구석이 많다. 하지만 나날이 좋아지고 있어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그는 무섭다.

캐칭도 마찬가지다. 아버지는 미국프로농구(NBA)선수 출신.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오빠들과 농구를 즐겼다. 그래서 그의 플레이는 남자들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생고무처럼 통통 튄다. 서전트 점프 73cm(우리은행 김영옥 55cm). 웬만한 한국 남자선수들보다 탄력이 좋다. 울퉁불퉁한 팔뚝 근육에 원 핸드 3점 슛이나 골밑 돌파와 리바운드 장악력 등 모자람이 없다. 더구나 캐칭은 한국에 올 때마다 더 강해져서 온다. 정미라 MBC 해설위원은 “캐칭의 성별 검사를 따로 해봐야 한다”고 우스갯소리를 할 정도.

사람 몸에는 약 600개의 근육이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쓰는 근육은 10∼20%도 안 된다. 평소에 하지 않던 운동을 하면 ‘알’이 배고 아픈 게 그 때문이다. 그만큼 어릴 적부터 여러 운동을 하면 쓰는 근육이 많아지고 강해져서 부상할 위험도 적어진다. 루니가 큰 키에도 서전트 점프가 90cm에 이르는 것은 어릴 때 단련된 기초체력의 힘이다. 루니는 ‘블로킹 높이’가 363cm인 이경수(LG화재)의 손끝 한참 위에서 스파이크를 내리꽂는다. 한국선수들은 어릴 때부터 이기는 것에만 신경쓰다 보니 성인이 되면 부상이 잦다. 신체의 특정 근육만 지나치게 사용한 결과 몸의 균형이 깨진 것이다.

루니와 캐칭은 겸손하다. 잘난 체하지 않는다. 동료와 친하게 지내고 한국 문화를 이해하려 애쓴다. 루니는 김밥과 탕수육도 잘 먹고 전화도 한국말로 “여보세요”하고 받는다. 캐칭도 “언니” “동생”이라고 부르며 동료들과 가족같이 지낸다. 가끔 박명수 감독에게 “간식 사달라”고 조르기도 한다.

하지만 코트에 나가면 몸을 던진다. 한국 선수들보다 더 헌신적이다.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동료들의 투지를 불러일으킨다. 그러면서도 정작 공은 동료나 감독에게 돌린다. 캐칭은 “팬들의 관심이 나한테만 쏠리는 것 같아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감독님과 동료들이 없었다면 나 혼자 어림도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루니도 “우리 팀 선수가 최고다. 김 감독님의 배구 열정에 반했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든다.

루니와 캐칭은 둘 다 귀엽다. 유머 감각도 풍부하고 항상 생글생글 웃는다. 승부보다 게임을 즐긴다. 운동에만 매달리지 않는다. 여유가 있다. 캐칭은 최근 2년 동안 미국 인디애나와 캐롤라이나 지역 어린이 농구캠프를 지도하고 운영했다. 17일엔 한국 초중고교 여자농구선수들을 대상으로 농구캠프도 열었다.

그들은 스포츠도 즐기고 인생도 가꾼다. 한국에서는 언제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선수, 미래의 꿈을 꾸는 선수들이 나올까. 오직 운동에만 매달리는 선수, 승부에만 목매는 선수, 금메달에만 눈먼 선수는 이제 제발 가라.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