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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세상/김정호]100% 영웅도 100% 사기꾼도 없다

입력 | 2006-01-21 03:10:00


세상에 100% 좋은 사람과 100% 나쁜 사람이 있을까?

어린아이들은 만화영화나 역사 드라마를 볼 때 누가 ‘좋은 편’이고 누가 ‘나쁜 놈’인지 분명하게 구분하려고 한다. 예컨대 왕건을 중심으로 한 드라마에서 고려는 좋은 편이고 견훤 등의 후백제는 나쁜 편이라고 인식한다. 어린아이들은 피치 못할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쁜 일을 하게 된 심약한 사람이나 마음의 상처나 잠깐의 욕망 때문에 착한 마음이 가려진 악당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냥 좋은 편은 100% 좋은 편이고, 나쁜 편은 100% 나쁜 편인 것이다.

어른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 사람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혹은 내 편과 적으로 쉽게 나누는 경향이 있다. 내 편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성격, 의도, 생각, 행동 등 모든 면에서 좋게 비친다. 내 편이 하면 로맨스고 적이 하면 불륜인 것이다. 이런 사고방식을 ‘흑백논리’ 또는 ‘이분법적 사고’라고 하는데, 중간은 없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고방식이다.

흑백논리는 ‘과(過)일반화’라는 사고와 함께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과일반화는 한두 가지 특수한 사례에 기초해서 일반적 법칙이나 결론을 도출하여 그 법칙을 무관한 일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A 씨가 한두 번 지각한 것으로 그가 시간관념이 없고 불성실한 사람이라고 결론 내린다면 과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는 흑백논리나 과일반화와 같은 비합리적 사고방식을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보고 비합리적 사고방식의 교정을 스트레스관리의 중요한 요소로 포함한다. 비합리적 사고방식이 심각한 경우에는 불안장애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장애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 경우에도 인지치료 등을 통해 비합리적 사고방식을 교정함으로써 치료한다.

세상에는 100% 악인도 100% 선인도 없다. 황우석 교수 역시 100% 영웅도 100% 사기꾼도 아니기 쉽다. 그는 없는 줄기세포를 있다고 거짓 보고를 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체세포 복제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키우는 기술과 복제개 스너피를 만들어 낸 기술을 가진 연구팀을 이끈 사람이다. 그런데 우리는 몇 가지 영웅적 행동을 하면 영웅으로 과일반화하고, 몇 가지 파렴치한 행동을 하면 사기꾼으로 과일반화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한 사람이 때와 장소, 상황에 따라 영웅적 행동을 하기도 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 간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그 배합의 차이인 것이다.

한 사람을 다양한 측면에서 보는 것이 우유부단하게 판단을 미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람에 대한 판단에 있어 다원적 관점을 취하는 것이 성숙한 자세이겠으나 그 사람의 개별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판단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해야 한다. 황 교수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며 관계기관에서도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한 사람을 다양하고 다원적으로 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이런 점에서는 이렇고 저런 점에서는 저렇다”는 방식의 이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면 이해도 어렵고 그에 따른 행동방식의 결정도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사고가 성숙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 고려와 후백제를 단지 좋은 편, 나쁜 편으로가 아니고 다양한 측면에서 설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린아이에서 어른이 되면서 사고방식도 성숙되어 가지만, 어른이 되었다고 성숙이 완성되고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번 황 교수 사건이 우리의 사고방식이 한 단계 올라가고 성숙해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해 본다.

김정호 덕성여대 교수·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