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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사고 분쟁 계속 느는데… 피해구제는 ‘좁은 문’

입력 | 2006-01-21 03:10:00


2002년 3월 김왕규(당시 49세) 씨는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중 동네 폭력배에게 맞아 쓰러져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으나 8시간 뒤 숨졌다.

김 씨 가족들은 “부검 결과 광대뼈와 갈비뼈가 부러진 사실이 드러날 정도로 부상이 심했는데도 담당 의사가 환자를 취객으로 잘못 알고 6시간이나 방치하는 바람에 숨졌다”며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김 씨의 친척 중 의사가 있었으나 그는 의료계 내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1심 때 증언을 거부했고, 김 씨 가족들은 의료사고를 다루는 한 시민단체의 소개로 알게 된 재미교포 의사의 도움을 받아 항소했다.

최근에는 건양대병원에서 위암 환자와 갑상샘 환자를 뒤바꿔 수술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의료사고가 잇따르면서 해마다 의료사고 피해구제 신청과 소송이 늘고 있다.

한국소비자보호원(소보원)에 따르면 2000년 450건이던 의료사고 피해구제 접수 건수는 2001년 559건, 2002년 727건, 2003년 661건, 2004년 885건, 2005년 1093건으로 6년 사이 142% 이상 늘었다.

의료사고 관련 소송 건수도 1999년 679건, 2000년 738건, 2001년 858건, 2002년 882건, 2003년 1060건, 2004년 1124건으로 해마다 늘고 있다.

하지만 소보원은 피해구제를 위한 강제조정 권한이 없어 병·의원 측이 조정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피해자들은 소송을 할 수밖에 없으며, 소송을 하더라도 긴 재판기간 때문에 경제적, 정신적 부담을 져야 한다.

2001년 9월 콧속의 종양에 대한 치료를 받다 시신경이 악성 균에 감염돼 실명한 김모(29) 씨는 피해 배상을 거부하는 병원 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1심에만 3년간 매달려야 했다.

소보원 이해각(李海珏) 의료팀장은 “의료 소송은 대법원 판결까지 평균 6년 정도 걸린다”면서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소송 때문에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의료사고 피해자들은 전문 지식을 갖춘 의사들을 상대로 의료 과실을 입증하는 부담까지 져야 한다.

의료사고가족연합회 이진열 회장은 “의사의 과실을 입증하려면 다른 의사에게 감정을 의뢰할 수밖에 없지만 의료계 내부의 시선을 의식한 의사들이 감정 의뢰에 잘 응해 주지 않아 어려움이 크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료행위 과실 여부에 대한 입증 책임을 의사에게 지우는 등의 의료사고 피해 관련 법안이 1989년 이후 지금까지 6차례나 발의됐으나 의료계와 시민단체, 정부 간 의견차로 18년째 표류 중이다.

지난해 12월 열린우리당 이기우(李基宇·보건복지위) 의원은 이 같은 취지의 ‘의료사고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의료계 반대로 통과가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정형외과 내과 산부인과順 분쟁 많아

정형외과와 내과가 의료사고 분쟁이 잦은 진료 과목인 것으로 조사됐다.

‘의료소비자 시민연대’는 2005년 6∼12월 접수한 1710건의 의료사고 피해구제 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정형외과 환자의 피해구제 상담 신청이 283건(16.5%)으로 가장 많았다고 20일 밝혔다.

내과가 247건(14.4%)으로 2위를 차지했으며 이어 산부인과 241건(14.1%), 치과 159건(9.3%), 신경외과 154건(9%), 일반외과 150건(8.8%), 성형외과 67건(3.9%), 안과 54건(3.2%), 한방서비스 43건(2.5%), 소아과 41건(2.4%) 등의 순이었다.

의료사고 분쟁 원인은 ‘수술 과정에서의 잘못’이 566건(33.1%)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오진 236건(13.8%), 주사 부작용 97건(5.7%), 병원 내 감염 96건(5.6%) 등이었다.

의료사고 피해는 치료 부위에 부작용이 있거나 더 악화됐다는 상담이 1019건(59.6%)으로 가장 많았다. 환자가 사망한 경우는 169건(9.9%)이었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