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내가 바꾼다.’ 변화는 보통 조직의 리더가 시작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요즘 신세대 직장인은 다르다. 피라미드 조직에선 바닥이지만 마음만은 사장 못지않게 혁신을 좇아 시키지도 않은 일을 벌인다. 이들의 공통점은 일과 사랑에 빠졌다는 것이다.》
태평양 뷰티트렌드팀 남용우(31) 과장은 회사에서 ‘남성미용 전도사’로 통한다. 무역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남 과장에게 화장품은 생소한 분야였다. 그러나 ‘다니기 편해 보여서’ 지원한 화장품 회사에서 적성을 발견했다.
“예쁜 것을 추구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이 좋았어요.”
미용 연구에 빠져 각종 논문, 해외 잡지를 뒤지던 그는 포화상태인 여성화장품 시장에 비해 남성용 시장은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남성이 새 성장 동력이다”라고 외치고 다녔다. 남성화장품 브랜드매니저를 1년 동안 쫓아다니며 에센스, 마스크 등 제품을 보강하자고 설득했고 사장에게 최신 트렌드를 모아 보냈다. 급기야 남성 미용법을 모아 책도 냈다.
“남자들은 아직 미용이라는 말에 거부반응을 일으켜요. 제대로 된 남성미용 문화를 알리고 싶었죠.”
2004년 11월에서 2005년 4월까지가 그에게는 매일 밤 12시에 퇴근하는 악몽의 시간이자 남성미용을 알리는 설렘의 시간이었다. 지난해 9월 펴낸 남성 미용법에 관한 책 ‘남성그루밍’(더북컴퍼니 간행)은 대만, 홍콩 등에서 중국어판으로도 나올 예정이다.
최근에는 회사 내 남성미용 강의도 기획했다. 모든 남성 임직원이 눈썹 다듬기에서 메이크업까지 다양한 내용의 미용 강의를 들었다. 교보생명 등 다른 회사에서도 강의를 부탁해올 정도.
남 과장은 “영화를 볼 때나 길거리에서나 사람들 얼굴만 보고 다녀서 큰일”이라며 “꾸준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직장인이 왜 저래?”
현대백화점 스포츠담당 바이어 임한오(29) 대리가 지나가면 으레 수군대는 소리가 들린다. 부스스한 긴 바람머리, 트레이닝복, 화려한 운동화. 그의 출근 복장은 보통 직원들과 다르다. 상사나 동료들이 복장에 대해 지적할 때마다 그는 “입어 보지 않고 어떻게 물건을 팔아요?”라고 웃으며 답한다.
스포츠 바이어로 배치된 후 그는 틈만 나면 시장조사 한다고 자비를 들여 일본으로 날아갔고 이때 찍은 스포츠 매장, 청소년 패션 사진과 동영상은 보고서의 ‘부록’이 됐다.
그러나 백화점 바이어의 한계도 느꼈다.
“브랜드에 임대료 받고 장사하면서 빠르게 변하는 소비자들을 어떻게 잡겠어요? 갑갑했죠.”
백화점이 직접 소비자가 좋아할 만한 상품을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일을 벌였다. 수수료를 받던 잘나가는 나이키 매장을 지난해 2월 직매입으로 바꾼 것. 백화점과 나이키, 양측 임원들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였다.
결국 실적으로 연결됐다. 본점 시범매장 매출이 15∼20% 늘자 다른 점포 나이키도 직매입으로 바뀌었다.
“7개 점포 나이키의 매입, 매출, 인사까지 책임지는 ‘사장님’이 되니 휴가 때도 4시간마다 노트북 컴퓨터로 매출 현황을 체크해야 마음이 놓일 정도예요.”
며칠 전 생일도 신설 매장 공사현장에서 보냈다는 임 대리는 “주말이 없다 보니 여자친구도 없다”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응원해 주는 상사가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