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포럼(WEF)이 세계의 각계 지도층 인사 2500명과 60개국 국민 5만 명에게 ‘올해 최우선 해결 과제’를 물었더니 ‘경제성장’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세계경제를 낙관적으로 전망한 응답자가 65%인데도 ‘더 높은 성장에 대한 요구’가 이처럼 강한 것은 성장 없이는 고용 증대나 빈곤 퇴치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내의 이른바 진보진영 교수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양극화 해소’(36%)보다 ‘성장동력 확충’(44%)이 최우선 현안으로 꼽혔다.
우리나라는 수년째 잠재성장률에 못 미치는 저성장을 기록했다. 이에 따른 고통은 경제적 약자(弱者)그룹이 가장 심하게 받는다. 이를 완화하려면 성장력 회복 전략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인위적 성장정책을 쓰지 않았다”고 자랑처럼 말해 왔다. 투자와 소비를 늘리는 정책을 효과적으로 구사하지 못해 성장이 저조하고 일자리도 늘지 않는다면 이는 정부가 책임을 느껴야 할 일이지, 자랑할 일이 아니다.
투자와 일자리, 소득과 소비가 늘지 않는 현실을 타개해야 양극화 완화도 가능한데 정부는 재정지출 확대를 앞세운다. “양극화 해소를 위해 재원(財源)이 더 필요하다”는 노 대통령의 18일 신년연설은 세금을 더 걷겠다는 뜻으로 읽히기에 충분하다. 재정경제부는 “증세(增稅)를 밝힌 적이 없다”며 불 끄기에 나섰지만 정부가 원하는 재원은 국민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국세청은 대통령의 연설을 기다렸다는 듯이 116개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정부는 또 올 상반기에 160가지의 비(非)과세 및 세금감면제도 중 75%인 120가지를 축소할 계획이다. 이는 농어민, 근로자, 중소기업을 포함한 중산층과 서민의 부담을 가중시켜 양극화를 심화할 소지가 크다.
기업과 개인 납세자를 끊임없이 쥐어짜고 이를 시혜적 복지에 쓰는 것은 일부 계층에 일시적으로 영합할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양극화 해소 대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민간의 성장 잠재력을 갉아먹어 양극화를 더 고착시킬 가능성이 높다. 혈세 낭비가 심한 정부라서 더욱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