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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코스’ 만든 美작가 쇼리스 씨, 노숙인들과 철학토론

입력 | 2006-01-23 03:03:00

2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에서 열린 얼 쇼리스 씨(가운데)와 노숙인들의 토론회.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교재로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김재명 기자


“소크라테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지혜로운 사람요.”

“어떤 면에서 지혜롭죠?”

“신념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죠.”

20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사랑의 열매 회관 지하 세미나실. 성공회대와 경기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워크숍 ‘가난한 이들을 위한 희망수업’ 참석차 방한한 미국 작가 얼 쇼리스(69) 씨와 이곳에서 철학 문답을 주고받은 이들은 대학생이 아닌 중년의 노숙인들이었다.

쇼리스 씨는 1995년 빈민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인 ‘클레멘트 코스’의 창설자(본보 18일자 A22면 보도). 국내에서는 대한성공회 노숙인 다시 서기 지원센터가 그의 교육과정을 도입해 지난해부터 노숙인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성프란시스대를 운영하고 있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노숙인 16명은 성프란시스대 인문학 과정 1학기 수료생들.

이날 간담회는 인문학 교육이 사람을 어떻게 달라지게 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리였다. 통역을 사이에 둔 토론이었지만 질문과 답변은 거침없었다.

쇼리스 씨가 “덕(德)에 대해 말씀하실 분”을 찾자 노숙인 학생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화살 하나로 줄 위의 참새 다섯 마리를 잡는 방법은 뭘까요? 자신이 곧 화살이 되어 참새와 함께 살면 됩니다. 그게 바로 덕이죠.”

쇼리스 씨는 탁자를 치며 감탄했다. “오늘은 제가 더 많이 배우네요!”

그리스 시대와 현대, 불교와 기독교를 넘나드는 토론은 2시간 동안 계속됐다.

토론을 참관하던 사람들도 혀를 내둘렀다. 성프란시스대를 후원하는 삼성코닝의 이웅교 인사지원팀 부팀장은 “5개월 전 첫 만남 때는 눈도 안 맞추던 노숙인 학생들이 이제는 먼저 와서 강의장 정리부터 한다”면서 “사람들이 180도 바뀌었다”고 했다.

토론을 마친 쇼리스 씨는 “이렇게 수준이 높을 줄 몰랐다. 소크라테스가 이 자리에 있었더라도 많이 배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숙인 김모(56) 씨는 “자기성찰과 덕에 대해 서양인과 대화하긴 처음인데 생각보다 재미있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살아야죠. 그냥 사는 게 아니라 덕을 쌓고 살아야죠.”

김희경 기자 susanna@donga.com